김검사의 하루

 

 

한국에서 기름 회사를 다닐 때 비록 원유나 제품 가격을 다루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약 9년 동안 일하면서 귀동냥으로 그것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얻어들은 것이 꽤나 있다. 특히 신입사원 교육 때 원유 도입에서부터 제품 판매까지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캐나다에 와서도 처음에는 이쪽 업계와 관련된 일들을 많이 했다. 마침 내가 담당한 구역에 캐나다에서는 큰 편에 속하는 정유소(한국 정유소들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도 있었기 때문에 계속 이쪽 업계에서 일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어쩌다가 온타리오로 넘어오게 되었고 그 결과 이제는 Oil and Gas Industries에서는 영 멀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금이 자세하게 구분되어 있는 주유소 영수증을 보자 과연 한국과 캐나다 휘발유 가격 구조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서 글에서는 캐나다 휘발유의 가격 구조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이번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 휘발유 가격의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내가 정유 회사에서 일하기 전부터 누차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정유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때 근거로 제시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름 값(원유 가격)이 오를 때는 휘발유 가격(제품 가격)을 바로 올리고 기름 값이 내릴 때는 휘발유 가격을 찔끔 내린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정유사에서 주로 주장하는 것은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에 아무리 원유 가격이나 제품 가격이 내려가도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가격 하락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선 세금이 휘발유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든 자료는 오피넷에서 가져옴. 오피넷은 정말 대단한 사이트이다.

 

 

우리가 주유소에서 만나는 한국의 휘발유 가격은 '세전 제품가 + 세금/수수료 + 주유소 마진/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해야 할 것은 '세전 제품가'에도 이미 원유 도입 시 부과되는 관세(3%)와 석유 수입 부과금(16원/L) 그리고 정제 비용 및 마진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분석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 여기서는 정제 이후 가격과 세금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한다. 

 

휘발유에 포함된 세금은 교통에너지환경세 529원/L, 교육세 79.35원/L, 주행세 137.54원/L, 부가세(10%)이다. 그리고 여기에 기타 수수료(품질 검사 수수료 등) 0.47원/L가 추가된다. 이렇게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 ~ 70%에 달한다. 앞의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캐나다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0~50% 정도이다.

 

두 나라의 휘발유 가격을 비교하여 세금이 휘발유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 휘발유 세전 가격은 2020년 1월 1주 약 600원에서 4월 3주 약 300원으로 50% 하락하였다. 비록 세전 가격은 50% 하락하였지만 실제 주유소 판매가는 약 21% 감소된다. 한편 캐나다(온타리오)에서는 세전 가격이 $0.70(약 600원)에서 50% 하락 시 주유소 판매가는 약 35% 감소한다.

 

 

위의 표와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휘발유 가격은 세금 비율이 높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나 국제 제품 가격이 크게 하락하더라도 그 하락을 제대로 체감할 수 없는 구조이다(*).

(*) 위 표와 그래프는 물론 현실을 100%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위에 사용된 한국 휘발유 가격은 주유소 유통/마진 비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이번 글의 주목적은 휘발유 가격에서 차지하는 세금 비율에 따른 가격 변동폭을 보고자 하는 것이므로 그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미국 서부텍사스 원유(WTI) 5월 인도분 가격이 마이너스 $37.63/BBL까지 내려가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것은 원유를 저장할 공간이 부족하여 발생한 일로 돈을 주고서라도 5월에 도착할 원유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유조선에 실려 온 원유를 받을 공간이 부족하여 유조선이 해상에 대기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제때 배를 비워주지 못하면 배를 빌린 사람은 선사에 체선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예전 회사에서 일할 때를 생각해 보면 하루에 수 십억 단위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즉 이렇게 돈이 나가나, 원유를 돈 주고 파나 똑같은 상황이라 유가가 마이너스가 된 것이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만약 한국의 정유사들이 쌓여가는 재고를 해결하지 못해서 0원에 휘발유를 시장에 내놓는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정유사가 휘발유를 무료로 내놓아도 소비자들은 821원(세금 = 1.1 * (529 + 79.35 + 137.54 + 0.47))을 내고 휘발유를 구입해야 한다. 정유사야 공짜로 기름을 내놓는다고 하여도 주유소 유통 및 마진은 0원이 될 수는 없을 테니 그 어떤 수를 쓰더라도 세금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1,000원 이하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유사에서 하는 이 주장, '우리가 아무리 공급 가격을 낮추어도 높은 세금 비율 때문에 휘발유 가격 하락에는 제한이 있다', 은 과연 모든 것에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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