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글로서 정유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증거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는 정말 정유사에서는 기름값이 오를 때는 바로 올리고 내릴 때는 찔끔 내린다는 주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원유나 제품 가격보다 국내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에 대해서.

 

사실 처음 휘발유 가격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 그저 캐나다와 한국 휘발유 가격 속에 포함되어 있는 세금들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일이 커져서 '정유사는 정말 폭리를 취하고 있는가'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한국의 석유 제품 가격 정보는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름값은 모든 사람들에게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정부에서도 모든 자료를 공개하는 듯하다.

 

아래 그래프는 오피넷에서 제공하는 가격 정보 중에서 주유소 평균가, 정유사 공급가(세전/세후), 국제 시장가 모두가 검색되는 2008년 5월부터 2020년 4월까지의 가격 정보를 나타낸 것이다.

 

2008~2020년 휘발유 가격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가격 추이 중에서 주유소 마진/유통과 국제/국내 가격차를 확대한 그래프

 

 

위의 그래프는 본인 스스로도 아주 흥미로운 자료였다. 

 

 

1. 국내 휘발유 가격은 국제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가? 다시 말하면, 뉴스에서 유가가 폭락했다는데 왜 주유소 기름값은 안 내리냐?

이쪽 업계에 있는(혹은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 바로 유가가 폭락하면 물론 주유소 기름값도 내려가겠지만 주유소 기름값에 영향을 미치는 더 중요한 요소는 원유 가격이 아니라 국제 제품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휘발유 가격이 국제 가격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제품 가격(MOPS)과의 차이를 살펴야 한다.

 

이는 첫 번째 그래프의 파란색(세전 가격)과 초록색(국제 시장가) 선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나도 국제 시장 가격과 국내 가격을 제대로 비교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둘은 생각보다 큰 차이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항상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는 높다. 하지만 국제 시장가는 싱가포르 현물 기준이므로 당연히 국내 가격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의 차이가 대부분 50~100원/L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을 볼 때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은 꽤나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정유사에서는 국제 제품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그것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는데 약 2~3주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을 한다. 이것은 국내 제품가(세전) 및 주유소 평균가와 국제 가격의 차이를 비교해 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아래 그래프와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정유사의 주장은 어느 정도 맞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 가격이 2주 또는 3주 뒤에 국내 제품가(세전 및 주유소 판매가)에 반영된다고 가정했을 때 국내 가격과 국제 가격의 차이의 평균과 표준편차가 줄어드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제 가격 반영이 3주 지연되는 것으로 가정할 경우 표준편차가 너무 크다. 숫자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가가 하락할 때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낮은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국제 가격은 약 2주 정도 후에 국내에 반영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국제 제품 가격이 국내 제품 가격에 반영되는데 2주가 소요된다고 가정했을 때의 그래프

 

2. 정유사에서는 기름값이 오를 때는 바로 휘발유 가격을 올리고 내릴 때는 찔끔 내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첫 번째 그래프의 빨간색(주유소 주간 평균가)과 갈색(정유사 주간 공급가) 선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앞서 설명한 1번 질문에 대한 답(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은 밀접하게 움직임)을 인정한다면 2번 질문은 주유소 평균가와 정유사 공급가만 비교하면 된다(*).

(*) 정유사 공급가(갈색)는 '세전 가격(초록색 선) + 세금(부가세 10%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액)'이므로 움직임이 완전히 동일하다

 

이때 아주아주 특이한 현상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주유소 주간 평균가는 정유사 주간 공급가와 달리 굴곡 없이 매우 미끈한 모양으로 움직인다. 즉, 급변하는 국제 가격 및 정유소 공급가와는 달리 변화가 매우 완만하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아래에서 설명할 '주유소 마진/유통 비용'을 고려해 볼 때 주로 유가가 하락할 때 문제가 되고 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국제 가격이나 정유소 공급가가 하락된 만큼 휘발유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즉, 실제로 국제 유가(원유, 국제 제품가)가 내려갈 때 국내 휘발유 가격은 찔끔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둘째, 국제 가격 및 정유소 공급가가 하락할 때 주유소 마진/유통 비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다. 이러한 사실은 첫 번째 그래프의 빨간색 동그라미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5월부터 2020년 4월 사이 '주유소 마진/유통 비용(주유소 주간 판매가 - 정유사 주간 공급가)'의 평균은 108.35원/L 이지만 유가가 급격히 내려가는 시기에 이 마진/유통 비용은 거의 언제나 150~200원에 달하고 있다. 내가 가진 자료를 통해서는 주유소 마진과 유통 비용을 구분할 수 없지만, 유통 비용의 경우 제품 가격이 내려가면 그것을 운반하는 탱크로리의 연료 비용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휘발유 가격이 내려가는 시기에는 주유소에서 의도적으로 마진을 높여 휘발유 가격 하락 폭을 줄인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꼭 유가가 내릴 때 정유사에서 '폭리'를 취한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주유소 = 정유사'가 아니기 때문에 주유소의 마진이 얼마나 정유사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둘째로 불황 또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소비가 줄어서 원유/휘발유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에는 기존에 더 높은 가격으로 받아 놓은 재고 물량의 가격 때문에 마진이 높아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휘발유 가격이 상승할 때는 싸게 사놓은 휘발유를 비싸게 팔지 않겠느냐라고 물을 수 있겠다. 사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첫 번째 그래프를 통해서 보면 오히려 제품 가격이 상승할 때는 주유소 마진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비는 꾸준한데 휘발유 가격은 계속 오르니 그냥 적당히 해 먹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유가 하락 시 마진을 높여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가격 하락을 줄임으로 누군가(정유사 혹은 주유소)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혹은 손해를 줄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사실들과 내가 그쪽 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을 통하여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적어도 '유가가 급락할 때 정유사가 휘발유 가격을 조금만 내려서 폭리를 취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가가 급락할 때마다(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정유사에서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엄청난 적자가 예상된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실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유사가 평소에는 남들보다 훨씬 많이 벌다가 조금 힘들어 지면 정부에 손을 벌린다고 비난할 수 있겠다(그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 논의를 하고 있는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정유사는 유가가 완만한 상승세나 완만한 하강세를 보일 때 많은 이익을 남긴다. 이는 정유업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어차피 정유업이라는 것이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 후 제품을 팔아 마진을 남기는 장사이고 수요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유가가 어느 방향으로든 완만하게 움직인다면 원유 및 제품 가격의 변동이 적고 그 미래를 예측하기도 용이하여 일정하게 수익을 올리기에 수월하다.

 

또한 이렇게 유가가 조용할 때는 사람들의 관심도 적어져서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말도 조금 줄어든다. 사실 정유사가 폭리를 취한다고 말을 하기에는 지금 같은 때가 아니라 유가가 안정적일 때 하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다.

 

다만 유가가 하락할 때 정유사와 주유소에서는 자신들의 마진을 높임으로 손해를 최대한 만회하려고 시도를 하는 듯하다. 이러한 점과 평소에 너무나도 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정유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말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점은 사실 한국은 국내 소비량 대비 정유사들의 정제 능력이 너무나도 커서 보는 이득도 많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캐나다의 경우 세계 3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제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정유소 하나가 갑작스럽게 멈춘다던가 미국에서 휘발유 소비가 갑자기 늘어날 경우 휘발유 가격이 하루아침에 급등을 한다. 때로는 주유소에 기름이 바닥이 나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주유소에서 기름이 없어서 기름을 못 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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