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남들 따라서 교회를 나가다 보니 교회나 성경이 꽤나 익숙했다(그러고 보면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기독교 학교였다). 오랜 기간 교회와 성경에 노출되어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워들은 이야기도 많았고,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한때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성경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래 보았자 최근 20여 년 간 교회에 열심히 다녀 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고 말하기 어색한 수준이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학문적인 호기심은 항상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앉아 그 주 설교 말씀에 쓰이는 성경 구절을 읽고 나서 성가대가 찬송을 부를 때면 과연 이것은 언제 누가 썼는지 궁금하여 성경책에 있는 주석을 읽어 보고는 했다.
한편 캐나다로 오기 전 한국에서 살 때 출판업계에서 일을 하는 친구가 나에게 읽어 보라며 이런저런 책을 보내 주고는 했는데 그때 보내 준 책 중의 하나가 김규항 씨가 쓴 '예수전'이라는 책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김규항 씨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그 친구가 왜 이 책을 보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는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여서 책의 초반만 조금 읽다 말았고, 어쩌다 보니 이 책은 나의 이삿짐들에 함께 실려 캐나다까지 오고 말았다.
캐나다에 와서도 한동안은 그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만약 나에게 한글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것이 맞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흘러 캐나다 생활에 여유가 좀 생겼는지 책장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어 보았다. 사실 이 책은 매우 얇은 책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2~3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결국 절반 정도만 읽고는 또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네 개의 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고, 마가복음의 일부 구절들은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발을 담그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아주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코스트코에서 댄 브라운의 'Origin'이라는 제목의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인기 작가의 책들의 경우 하드커버의 책이 나온 후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르면 페이퍼백으로도 출간이 되는데, 댄 브라운 소설의 경우 페이퍼백 버전이 출간되면 항상 코스트코에서 판매를 한다. 그래서 영어 공부도 할 겸, 오랜만에 소설도 읽을 겸 해서 그의 책을 사서 읽어 보고는 한다. 그의 소설이 항상 그렇듯 이번에도 로버트 랭던과 그를 돕는 여자가 등장한다. 책 마다 너무 비슷한 전개라 이제는 조금(사실은 많이) 식상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다 읽고 나니 종교에 대해서 조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솔직히 시간이 오래되어 종교에 대한 무엇이, 어떻게 고민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민을 하다 보니 이번에는 성경에 관련된 다른 책들을 좀 더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Bart D. Ehrman이 쓴 'Misquoting Jesus: The Story Behind Who Changed the Bible and Why'라는 책이었다(국내에도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됨). 이 책은 성경의 필사, 번역 과정에서 어떻게 성경의 내용들이 조금씩 변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 두껍지 않으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아마도 성경이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신성을 모독하는 책 정도로 취급될 것이다.
참고로 책이 발간된 지난 2005년, 작가가 한 인터뷰를 찾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 주는 인터뷰라고 생각되어 링크를 걸어보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나서 또다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의 첫째는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써진 성경의 원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성경에 적혀있는 내용 중 실제로 무엇이 정말 예수가 한 말이고 무엇이 나중에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으로 '죄 있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는 구절이다. 문제는 2세기경 쓰인 사본들에서는 이 구절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후에 추가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네 개의 복음서에서 그려지는 예수의 모습이 모두 다르며 각 복음서끼리 모순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필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신약의 여러 곳이 잘못 번역되거나 일부러 변경되기도 한다(아래에 이야기하겠지만 물론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본다면 이렇게 디테일한 것까지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는, 처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렇게 나이를 먹고 서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인과 교회에 대해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 도서관에 있는 책만 읽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을 교회에서는 그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 혹은 내가 찾아볼 생각조차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사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성경책에도 이렇게 논란이 되는 부분에는 대부분 '고대 사본에는...'이라는 주석이 달려있다. 그동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The Origin of Satan'이라는 책의 작가인 Elaine Pagels의 인터뷰를 듣게 되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매우 인상적인 인터뷰였다. 그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구약(히브리 성경)에는 사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구약을 통틀어 오직 40~50회 정도만 '사탄'이라는 말이 언급됨). 그나마 구약에서 사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욥기인데, 욥기에 등장하는 사탄은 하나님의 종 정도로 묘사되고 욥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히브리어에서 나온 사탄(인터뷰를 듣다 보면 히브리어로 '하세탄'이라고 발음됨)의 뜻은 Opposer, 즉 '반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써진) 마가복음 첫 장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사탄이 등장한다. 신약에서 갑자기 이러한 사탄의 존재가 등장하는 이유는 당시 시대 상황과 관련이 있다. 2000여 년 전 일부 유대인(에세네파, Essenes)들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에 반하는 어둠의 세력, 즉 사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로마에 협력하는 다른 유대인들을 보면서 이러한 세력(사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이러한 생각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나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이러한 사고 방식이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다른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로마에 저항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구할 메시아라고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저 실패한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에 반하는 '사탄'이라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예수는 단순히 로마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사탄에 맞서 우리를 구원하려다가 죽음을 당했고 결국 부활을 했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사탄이 매우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 및 Elaine Pagels이 쓴 The Origin of Satan을 참고 바람
이 또한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바로 한국 교회에서 말하는 사탄 또는 마귀의 존재가 약간은 근본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기독교에서 나쁜 사상이나 사람을 사단, 사탄, 마귀 등으로 부르는 것이 이상하다고(혹은 웃기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나 우리 부모님 세대의 기독교인들은 툭하면 마귀에 씌었다느니 사탄을 물리쳐야 된다는 식으로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것과 귀신에 씐 사람에게 굿을 하는 샤머니즘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의 존재 자체가 구약에는 없다가 신약에 (필요에 의해서) 등장한 것이라면 정말 사탄이 있기는 한 것일까 심각히 고민을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점점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의문이 커져 가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와도 조금씩 멀어졌다. 그런데 은근히 마음은 홀가분했다. 오히려 속박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면 있는 것일까. 우연히 도서관에서 'A History of the Bible'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총 500 페이지가 넘는 무지막지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한동안 다른 책들은 읽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빌릴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일단 안 읽더라도 한 번 빌려는 보자라는 생각으로 책을 빌렸다.
이 책을 처음 빌린 것이 2019년 말이었다. 나의 영어 독해 속도가 느리기도 하거니와 책 자체도 너무 두껍고 무거운 내용이라 읽다가 말다가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래서 대출 기한을 거듭 연장하였고, 반납했다가 다시 빌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면 있는 것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책의 대여 기간도 끊임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다시 힘을 내어 읽기 시작했고 관심이 적게 가는 몇 개의 챕터는 건너뛴 끝에 책을 읽기 시작한 지 거의 7개월 만에 마지막 챕터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쓴 John Barton은 신학자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 교수로 일을 했고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신부)라고 한다. 책의 놀라운 두께만큼이나 성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놓았다. 구약과 신약의 구성과 기원, 쓰인 언어, 성경이 경전(Scripture)이 되는 과정 등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도 설명을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성경 자체에 대해서 참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와이프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처음 성경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벌써 2년 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초반에는 이런저런 책과 인터뷰를 들으며 성경의 모순, 오류, 잘못된 점에만 집중을 했었다. 그런데 몇 개월 동안 이 'A History of the Bible'이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성경에 써진 내용들이 정말 예수가 한 행동이나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들은 요한복음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경우에도 비록 이 구절이 2세기 사본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나중에 구전하는 이야기나 지금은 없어져 버린 참고 문헌에 있던 이야기를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성경의 원본을 찾을 수 없다면 하나하나의 모순이나 오류에 집중하기보다는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바라봐야겠다.
또한 성경에 포함되는 책(복음서)들이 결정되는 과정도 댄 브라운의 소설에서처럼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것이 아니고 그저 오래되고 권위가 있는 책들이 자연스럽게 성경에 포함되었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설명이라고 생각되었다. Gnostic Gospels(발음: 노스틱 가스펠스, 영지주의 복음서)로 대표되는 복음서들이 없어지게 된 이유는 누군가 눈에 불을 켜고 이 복음서들을 없앤 것이 아니라 아니라 일부 지역, 일부 사람들에게만 읽혔기 때문에 사본들이 많이 존재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드는 생각은 결국 종교는 종교이기 때문에 무엇이 맞다 틀리다고 말할 수 없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믿으면 그런 것이고 믿을 수 없다면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굳이 믿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다 거짓말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겠고, 굳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믿으라고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아무튼 동네 도서관에 만날 수 있는 책들을 통해서도 종교에 대해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위에서 소개한 Bart Ehrman이 2014년에 쓴 책인 'How Jesus Became God'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싶다. 이 또한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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