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시간은 참 빨라서 2020년 11월에 결혼 10주년을 맞이하였다. 정말 공교롭게도(?) 결혼기념일과 와이프 생일이 단 하루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결혼기념일에는 그동안 변변한 선물도 못 해준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자잘한 것 말고 큰 것을 하나 선물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 살다 보면 필요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곳에서는 샤넬백을 가지고 있더라도 들고 다닐 일이 없다. 정말로!

 

여름에는 아이들 세 명의 짐을 들고 다니기에 바쁘고 겨울에는 추워서 다들 꽁꽁 싸매고 다니는데 무슨 놈의 샤넬이고 루이비통이겠는가.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서 고민 끝에 그래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애플 워치를 선물해 주었다. 큰 마음먹고 셀룰러가 붙어있는 모델로. 와이프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샤넬백은커녕 핸드폰을 들고 다닐 손도 부족한데 급할 때는 핸드폰 없이 전화를 받을 수도 있어서 만족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정말 필요한 것이 없었다. 나는 개인용 핸드폰도 없으니 애플 워치가 있어봐야 100% 활용이 불가능했고, 딸이 쓰다가 만 아마존 킨들 HD 8을 주워다가 쓰고 있으니 아이패드도 필요 없었다(만약 그때 전자책을 알았다면 그것을 사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이것저것을 고치다 보니 부품이 없어서 고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와이프 재킷의 버클 같은 것이 고장 났는데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고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재봉틀에 들어가는 Bobbin(밑실을 끼우는 틀)도 사이즈 맞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만약 3D 프린터가 있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부터 3D 프린터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마존에서 파는 제품들은 주로 중국산들이 많았는데 기계가 얼마나 괜찮은지 가격은 얼마나 적당한지 알기 어려웠다(사실 인터넷을 일일이 다 찾아보기 귀찮았다). 게다가 검색을 시작하기 얼마 전 아마존 프라임데이 때 크게 할인을 했던 3D 프린터들도 있었기 때문에 제 값을 주고 샀다 나중에 할인을 하면 속이 쓰릴 것만 같았다. 

 

한편 내가 가끔 듣던 팟캐스트의 호스트가 3D 프린터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찾아서 들어 보니 Prusa라는 회사의 제품이었다. 3D 프린터에 문외한인 나는 물론 듣지도 보지도 못한 회사였지만 그 사람이 '다양한 리뷰를 찾아보았는데 가장 평판이 좋아서 사게 되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인터넷을 엄청 찾아본 끝에 내린 결론이겠다는 생각에 나도 그냥 Prusa를 사자고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샀다는 모델은 Prusa의 기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Prusa i3 MK3S+ 였는데 가격이 750불 정도로 너무 비쌌다. 게다가 미국 달러였으니 캐나다 달러로 환산하고 배송 및 세금까지 고려하면 1000불이 훨씬 넘는 가격이었다. 와이프 재킷의 버클을 고치자고 그렇게 비싼 것을 살 필요는 없으니 다른 것을 찾아보았다. 마침 그보다 크기가 작으면서 가격이 350불 정도에 불과한 Prusa Mini가 보였다. 이 정도면 살만한 가격이라고 생각이 되어 그냥 이것으로 결정을 하였다.

 

Prusa 홈페이지에서 주문을 하려고 보니 두 개의 옵션이 있었다. 'Spring steel sheet'와 'Filament Sensor'라는 옵션이었는데 말 그대로 3D 프린터에 문외한인 나는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있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Spring steel sheet의 옵션인 'Smooth PEI & Textured powdered coated'을 선택하면 USD 30이 추가되고 Filament Sensor는 USD 20이 추가되어 고민 끝에 그냥 Filament Sensor만 추가하였다(그런데 역시 그냥 두 개 다 선택할 걸 그랬다).

 

기본 가격은 USD 350 정도지만 이런저런 옵션에 배송비(USD 63.17 !!!)가 추가되니 USD 450을 넘었다. 게다가 캐나다 통관 시 세금이 추가로 발생한다.

 

 

이 Prusa Mini는 인기가 좋은지 내가 주문할 당시 배송 기간이 7~8주에 달했다(현재는 9~10주인 듯). 주문한 날이 10월 20일이었는데 그 주에 들어간 주문은 12월 14일부터 배송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래서는 크리스마스 전에 도착하기도 힘들겠고 새해가 지나기 전에 도착하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도 가끔씩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배송기간을 확인해 보았지만 배송 예정일은 변함이 없었다. 

 

드디어 12월 14일이 되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없길래 크리스마스 전에 도착하기는 정말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2월 17일 갑자기 배송이 시작된다는 메일이 도착하였고 갑자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중간에 배송사로부터 통관비를 내라는 메일도 받아서 거금 CAD 83.36도 납부했다(이런 점에서 미국이 정말 부럽다. 미국은 USD 800까지 관세가 면제되어 i3 MK3S를 사도 세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데 문 앞에 뭔가 묵직한 것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인기가 많은지 배송이 정말 오래 걸린다. 배송은 갈 수록 더 오래 걸려서 2021년 1월 기준 Mini+의 배송 기간은 9~10주에 달한다.

 

 

막상 받고 나자 은근히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며칠 후에나 조립을 하려고 포장을 뜯어보았다. 포장을 뜯어보니 내가 받은 것은 Mini가 아니라 Mini+라고 한다(Mini에서 약간 Upgrade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Mini에서 Mini+로 바뀌면서 가격이 50불 정도 인상되었는데 옛날 가격으로 새것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밑에 보이는 Haribo 젤리는 조리하다 먹으라고 들어있다

 

조립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박스에 들어있던 설명서가 조금 작아서 와이프의 아이패드를 빌려 웹페이지를 띄어 놓고 조립을 하였다. 천천히 조립했는데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대부분 설명서를 따라서 조립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아래의 Step 14에서 볼트를 끼우는 게 쉽지 않았다. 아래 화살표가 보이는 구멍으로 볼트를 넣은 후 움직이는 너트에 끼워야 하는데 너트가 보이 지를 않으니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조립 완료 이후에는 Calibration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First Layer Calibration이 중요한데 원하는 대로 출력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우선 이쯤에서 접고 다음번에 본격적으로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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