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온타리오로 오기 전에 일했던 사스카추완의 회사는 리자이나와 사스카툰에 각각 사무실이 하나씩 있었는데 매년 번갈아 가면서 인스펙터 세미나를 했다. 한 번 사스카툰의 사람들이 리자이나로 내려오면 그다음 번에는 리자이나 사람들이 사스카툰으로 올라가는 식이었다. 이때 사람들끼리 차를 나누어 타고 올라가기 마련인데 내 차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서양 아저씨와 함께 올라가게 되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에 보니 이 아저씨가 피곤해 보여서 나는 괜찮으니 좀 자라고 하였다. 갑자기 차 안이 조용해지면 어색할 것 같아서 라디오를 켰다. 뉴스나 들을까 하여 CBC를 켰는데 마침 코미디 프로그램이 나왔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코미디언이 사람들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가 인기가 많은데 이 프로가 마침 그러한 코미디를 방송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코미디를 100%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코미디언의 말도 매우 빠른 데다가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이런저런 배경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절반 정도나 알아들으면 다행일까 싶다.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는 같은데 정확히 무엇이 재미있는 포인트인지는 알 수 없는 그런 경우가 많다.

 

아무튼 나는 별생각 없이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잠을 잔다던 이 아저씨가 갑자기 '킄', '킄킄', '크크크크'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 잠까지 달아나게 만드는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웃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도 남들이 웃을 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계속 운전을 했다.

 

 

시간은 흐르고 요즘에는 무척이나 많은 팟캐스트를 듣다 보니 그때보다는 사정이 나아진 것 같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몇 년 전보다는 10% 정도는 더 웃지 않나 싶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데이비드 세다리스 (David Sedaris, 영어로는 '시대리스' 정도로 발음)이다. 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 This American Life 라는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아주 자주 등장하는 사람인데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길래 처음에는 그냥 코미디언인 줄 알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아주 특이한 편이어서 남자인 것 같기는 한데 목소리가 매우 허스키한 여자인가도 싶었다.

 

 

가장 처음 들은 이야기는 Santaland Diaries 라는 이야기로, 이 사람이 백화점에서 산타 옆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엘프로 일을 했을 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92년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을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아래는 그 이야기 중 일부를 가져와 봤다. 

 

 

총 30분 분량의 모든 이야기는 아래에서 들을 수 있다.

 

Santaland Diaries - This American Life

Writer David Sedaris's true account of two Christmas seasons he spent working as an elf at Macy's department store in New York.  When a shorter version of this story first aired on NPR's Morning Edition, it generated more tape requests than any story in th

www.thisamericanlife.org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이후에도 이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This American Life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그냥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썼다는 'Me Talk Pretty One Day'라는 책이 소개되어서 뭔가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동네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책을 찾아보았다. 마침 이 책은 대출 중이었지만 가장 최근의 책인 'Calypso'를 빌려볼 수 있었다.

 

 

이 사람의 책을 읽어 보니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기본적으로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자신이 쓴 글을 읽어 주는 것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가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90년대 초반 (This American Life의 제작자인) Ira Glass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의 글들을 읽어 주면서부터이다. 그가 쓴 글들 자체가 재미있는데 그 특유의 목소리로 글을 읽으면 재미가 배가된다.

 

이 사람의 글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 가족 이야기, 남자 친구 이야기, 현재 생활 이야기 등등. 솔직한 이야기로 한국에서 이런 글을 쓴다면 아주 많은 욕을 먹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자신의 종양을 떼어다가 거북이에게 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것까지 유머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약간 놀라웠다.

 

그래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안 되지. 

 

그런데 글을 쓰려고 보다 보니 놀랍게도 벌써 한국에도 이 사람 책이 몇 권이나 소개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어느 책에는 이 사람을 미국에서 '최고로 웃기는' 작가라는 설명으로 이 사람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 책들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한국 사람들에게는 안 맞을 것 같은 이야기가 많아서 인기가 많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예를 들면 동성애 이야기라든지).

 

그래도 (캐나다나 미국) 동네 도서관에 이 책이 있다면 찾아서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각각의 이야기의 분량이 그렇게 길지 않은 데다가 꽤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장이나 단어의 수준이 꽤나 높다. 게다가 그 안에 담겨있는 냉소적인 유머도 재미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 보거나, 또는 오디오북을 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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