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무척이나 군대를 늦게 갔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곳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시기적으로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간 것이기 때문에 (6번째 학기는 휴학을 하긴 하였다) 어느새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전역하고 다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서 나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를 가기 전에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하여도 군대를 다녀오면 다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한 4학기 정도부터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돌아가도 이제 겨우 3학기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애가 탔다.

 

그래서 위에서 눈치를 줄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을 무렵부터 (그러고 보니 상병 말호봉 정도에 분대장이 되었으니 괜찮은 군번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군대 내에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하였고, 휴가나 외출로 밖에 나갔다 들어 올 일이 있으면 책을 사 왔다.

 

그리고 내가 있었던 부대는 보급 부대여서 꽤나 자주 상급 부대에서 물건을 실어와야 했다. 전주에서 전남 장성으로 다녀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반드시 들렀는데 그때마다 후임병에게 500원을 쥐어 주고 신문을 사달라고도 했다 (아쉽게도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나가 볼 기회가 없었다). 

 

내가 있던 부대는 널널한 편이었기 때문에 취침 시간이 되어 소등을 하고 나면 한 시간 정도 TV를 봤다. 다른 사람들이 TV를 보는 날이면(꽤나 자주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혼자서 만든 전등을 켜고는 1~2시간 정도 신문을 읽고 책도 일고 일본어 공부도 하였다(학교에 돌아가면 교환학생을 지원하고자 일본어 공부를 했다). 

 

이때쯤 처음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 '블링크'라는 책이었는데 내 기억에는 내가 휴가나 외출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서점에서 눈에 띄어 샀던 것 같다(아니면 병영 도서였는지, 또 그렇지도 않으면 다른 사람이 읽던 책을 받아서 읽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14년 전의 일이라 상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이미 눈 깜빡하는 정도의 시간에 대부분 결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글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책인 '티핑포인트'라는 책도 구해서 읽어보았다. 역시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캐나다에 온 이후 그의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예전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Revisionist History'라는 팟캐스트였다. 2016년부터 매년 약 10편의 에피소드를 발표하고 있는데 그의 글들이 그렇듯 이 또한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 팟캐스트는 우리가 '간과했거나 잘못 이해를 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자료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정말 놀랍기만 하다. 

 

그의 관심사는 끝이 없어 보인다. 심리, 교육, 사회, 범죄, 법, 역사, 스포츠 등등 정말 많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팟캐스트를 듣거나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반인이라면 정말 관심이 없을 법학 저널이라든지 범죄학 저널 등을 취미 삼아 읽는 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그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여기서는 3시간 거리라면 가깝다고 해야 한다) 곳에서 자란 캐나다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 관심이 생긴다고 할까나. 

 

최근에는 이 팟캐스트에 매진하느라 그랬는지 책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는데 아주 최근에 'Talking to Strangers'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지난 2015년 7월 발생한 Sandra Bland라는 여성의 사건에 대한 답을 찾는 내용이다. 그녀는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힌 후 그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과격한 행동으로 구속이 되었고 3일 후 구치소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Black Lives Matter' 운동, 즉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의 대표적인 예로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말콤 글래드웰은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흔히들 우리는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기분이 어떤지, 거짓말을 하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느 사람이 눈을 회피하고, 말을 더듬고, 과장되게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을 통해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Transparency'라고 하며 실제로는 이것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맞다는 가정을 하고(Truth-Default) 사람을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큰 의심이 들지 않는 이상, 이상하다고 생각하여도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만다. 이 때문에 사기꾼들이 사기를 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끔씩 사기를 당할 수는 있어도 Truth-Default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닌데, 만약 우리가 이렇게 사고하지 않는다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믿을 수 없게 되어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에 반하는 것이 바로 최근 미국 경찰들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순찰 방법이다. 이것은 90년대 초 캔사스시티에서 벌어진 실험에서 아주 조그마한 법규라도 어긴 차들을 공격적으로 수색하여 범죄율을 크게 낮춘 것에서 기인했다. 사실 이 방법은 범죄율이 아주 높은 지역만을 대상으로 총기를 규제하자는 시도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면서부터는 그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되는 대로 많은 수의 차량이나 사람을 수색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Sandra Bland 사건은 단순히 백인 경찰이 흑인을 과잉 진압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는 편견과 (Truth-Default가 아닌)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경찰의 행동 방식, 그리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만을 대상으로 실시해야 하는) 너무 공격적인 순찰 방식이 어우러져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언제든 이러한 일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물론 미국에서),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내 뜻과는 다르게 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책은 아직 한국에서는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Revisionist Hitory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 버전의 이 책 3번째 장을 들을 수 있다 (아래 링크 참조). 이것을 조금 들어 보니 그의 목소리로 들어 보는 것도 흥미가 있을 듯하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에 오디오북을 예약했다. 내 순번이 25번이니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들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Chapter 3, The Queen of Cuba

 

The Queen of Cuba by Revisionist History

On February 24, 1996, Cuban fighter jets shot down two small planes operated by Brothers to the Rescue, an organization in Florida that tried to spot refugees fleeing Cuba in boats.

megaphone.link

 

 

혹시 한국에서 번역본을 기다리기 힘들다면 내 친구 구 모군이 일하고 있는 곳에서 원서를 주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놀랍게도 가격이 15,380원이다. 캐나다에서는 가장 싸게 사도 세금까지 하면 20불은 넘는데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인기 있는 책들은 나중에 한국 갈 일이 있을 때 사는 것이 좋겠다. 

 

 

Talking to Strangers

How did Fidel Castro fool the ...

www.kyobobook.co.kr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