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글쓰기가 취미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주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얻은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 블로그를 오래 하면 적어도 선플이나 악플이라도 얻었겠지만, 다른 사람의 글들은 잘 읽지 않아 교류가 별로 없어서 그것조차도 별로 얻지 못했다. 그나마 요즘에는 애드센스라는 것이 생겨서 광고 수익이라도 얻을 수 있겠지만 3년이 다되어가도록 100불 문턱조차 넘지 못한 것을 보면 영 쉽지 않다(그래도 최근에 스킨을 바꾸고 나서 수익이 조금 더 늘었다). 

 

하지만 그래도 평생 글을 써서 두 번 정도 이득을 본 일이 있었다. 첫번째는 처음으로 입사했던 회사의 사보에 (아주 짧은) 글을 써서 3만 원 정도를 받았던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군생활 때 국방일보에 글이 실려 6박 7일 휴가를 다녀온 것이다. 이 또한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일인데 예전 글을 정리하다가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잊었던 옛날 기억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도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군 생활의 절반이 지난 2005년 4월경에 국방일보에 내가 보낸 글이 실렸다. 그 국방일보 글을 스크랩해 놓았어야 했는데 아쉽다. 다음은 당시의 배경을 이야기해 주는 글이다.

 


'국방일보 덕분에 (2005년 5월 22일 작성)'라는 글 일부를 가져옴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 아직 2차 휴가를 잘라서 나가기에는 남은 날이 너무나 까마득하고, 그렇다고 보직상 작업을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던 중 국방일보에서 책이나 공연, 영화등의 감상문을 모집하는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가장 현실성 있었고, 가장 손쉬웠으며, 가장 자신 있었습니다. 공연이나 영화는 본지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독후감을 쓰기로 작정을 했고 어떤 책을 가지고 감상문을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읽어 본 책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어떤 책으로 감상문을 쓰면 좋을지 생각했습니다. 몇 시간을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이 바로 성석제의 새로운 소설집인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였습니다. (요구되는) 분량은 원고지 5~6장 정도. 우선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져서 8장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필요 없는 조사를 지우고, 접속사를 적절히 사용해서 문장을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분량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문장도 버리기 쉽지 않았지만 반복해서 글을 읽으며 문장을 지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꼭 필요할 것 같던 문장도 지우고 나니 글이 오히려 더 명료하고 깔끔해졌습니다. 그렇게 10회 이상 문장을 가다듬고, 단어 하나하나를 다듬어서 글이 완성되었습니다. 그게 (2015년) 3월 초순. 하지만 3월이 지나가도록 글을 실리지 않았습니다.

 

역시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기대를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병원에 가게 되고, 입원한 지 1주일 후 국방일보를 보니 제 글이 실려있었습니다.

 

앗싸!

 

 


 

아래는 당시 국방일보에 실렸던 글(2005년 4월 경)이다. 뭐 특별히 뛰어난 글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군대'와 '어머니'라는 키워드가 어우러져서 6박 7일 휴가증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쓴 글을 보면 내가 직접 사단 부관부에서 가서 휴가증을 받았다고 했는데(사단 직할대에서 근무해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어떻게 국방일보에 실렸다고 휴가증을 내주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사단의 명예를 높이는 경우 휴가를 보내줄 수 있는 규정을 이용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 내가 행정병이어서 뭔가 서류를 잘 만들었나 보다. 

 

 


 

얼마 전 8,000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단 도서관이 개관됐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읽고 싶은 많은 책 중 내가 맨 처음으로 선택한 책이 성석제의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였다.

 

순수 문학보다 인문, 경제 등의 실용 서적이 훨씬 많이 읽히는 요즘 독서 문화에 물든 나는, 문학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반납을 부탁한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문학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의 작가가 바로 성석제였다. 그의 소설은 문체도 뛰어났지만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그때까지 현대소설 하면 '상실, 고독, 단절' 등의 우울한 주제가 떠올랐지만 그는 우리 일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우울함과는 다른 주제를 택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가슴에는 뭉클함이 전해지는 것이다. 새로운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도 마찬가지다. 기대했던 대로 웃고 울리기를 반복하는 아홉 편의 따뜻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글은 표제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이다. 길쌈하는 어머니는 시름이 가득하고 맏딸은 그것을 덜어주기 위해 고전소설을 읽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아버지의 죽음 이후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온 부부는 먹고살기 위해 손발이 갈퀴와 보습이 되도록 일했다. 시간이 흐르고 숨 돌릴 여유가 생겼건만 남편은 한 겨울에도 장을 찾아 돌아다니기를 멈추지 않는다. 집안의 기둥으로 삼을 맏아들과 함께.

 

과묵한 아들은 '동무들은 경성으로 동경으로 유학을 간다는데 언제까지 이런 시골구석에서 명심보감이나 읽으며 세월을 보내야 합니까'는 말을 속으로 삭힐 뿐이다. 남들처럼 살지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장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열입곱 아들의 한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 아들과 혼기가 찬 딸 걱정으로 어머님의 한숨은 그치질 않는다.

 

딸이 읽어주는 이야기가 끝날 무렵 돌아온 아들이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는 '아이고'하며 뛰쳐나간다. 아들의 부름에 '아이고'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어무이, 어무이' 재차 어머니를 부르는 아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만도 하지만 아들은 그저 어머니를 부를 뿐이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들을 군대 보내고 형마저 집에 없는 지금 전화도, 편지도 자주 하지 않는 아들이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이렇게 무심한 아들이지만 집에 돌아가면 '아이고'하며 반기시겠지. 바쁜 생활 중에 가족을 생각하게 만들고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 이 책이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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