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특별히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친구들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 봐야 한 달에 한 권 정도를 읽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다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군대에 가버려서 그랬을까)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마침 학교에 얼마 남아있지 않던 친구 중 한 명이 책을 많이 읽는 녀석이어서 그 친구가 보던 한국 소설을 읽어 보았는데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때 읽었던 책이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였는데 그동안 내가 몰랐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국 소설들을 찾아 읽기 시작하였다. 곧 군대에 가서 1년 정도는 책을 읽을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짬이 차고 나서는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정말 열심히 읽기 시작하였다. 잃어버린 2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그래서 전역하기 전까지 100권의 책을 읽자고 목표를 세웠고 거의 100권이 가까운 책을 읽었다(아마 서울 집에 아직도 그때 읽었던 책들의 제목을 적어 놓은 노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군대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읽어 나갈 때 발견한 작가들이 바로 김연수와 김애란이다. 당시 어느 일간지에 떠오르는 작가라고 소개되어 나중에 한 번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전역 후 먼저 김연수의 책들을 읽어 보았는데, 그는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아쉽게도 캐나다에 온 이후에는 한국 책들을 별로 읽지 못하고 있으니 최근 그의 작품들은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내가 정말로 옮겨오고 싶었던 글은 김연수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읽고 쓴 글이었는데,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엠파스가 이글루스로 통합되면서 그 글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그 글 제목을 클릭해 보니 제목과 답글들은 그대로인데 본문만 앞글과 똑같은 내용으로 바뀌어 있던 것이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더 아쉽다. 그래도 이 책에서 기억에 남았던 문구가 있다.

 

 

김연수, '뉴욕제과점'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中)

 

나중에 나는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인생은 그런 게 아니었다. 점점 자기 그림자 쪽으로 퇴락해가는 뉴욕제과점 구석 자리에서 나이가 스무 살 정도는 더 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앉아 '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바로잡는,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었다.

.........

이제는 죽어서 떨어져나간, 그 흔적도 존재하지 않는 자잘한 빛, 그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직도 나를 규정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위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라고 해보았자 겨우 만 23세였지만 나는 이미 나의 과거가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금 이 문장을 다시 읽어보아도 또다시 과거가 후회스럽다.

 

더 이상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면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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