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캐나다에 와서 에드먼튼에서 잠시 살다가 리자이나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별로 없는 좋은 점 중에서) 좋은 점을 하나 찾아낸 것이 바로 미국을 육로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에드먼튼에서는 육로로 미국까지 가려면 국경까지 가는 데에만 6시간 이상 걸리지만 리자이나에서는 2시간 30분이면 국경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 사는 곳에서 미국 국경은 30~40분이면 가니 참으로 순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자이나에서 맞이한 첫여름 (2015년 7월) 우리 가족은 육로로 미국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당시 목표로 했던 곳은 노스다코타주의 수도였던 비스마르크였다. 리자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약 4시간 거리의 마이넛(Minot, ND)이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마이넛은 미공군 기지가 위치한 인구 5만 명의 소도시로 인구 20만 명이 넘는 빅시티에 사는 우리가 갈만한 곳은 아니라고 혼자 결론지었다. 그리고는 그보다 2시간 남쪽에 있는 인구 10만의 비스마르크를 가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2015년 7월의 마지막 금요일 우리는 정오에 리자이나를 떠나 남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해 리자이나와 그 주변에는 유난히 흰나비들이 창궐했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적어도 삼천 마리 이상의 흰나비들을 죽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당시 지역 뉴스에 나온 그 흰나비들의 애벌레들 화면은 장난이 아니었다. 어느 집 지하 창문에 30cm 이상 애벌레들이 쌓여있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차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나비 시체를 제거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처음 육로로 미국 국경을 통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는데 어느 사람이 국경 통과 시 (캐나다) 영주권을 보여주니 지난번과 달리 군말 없이 통과시켜 주었다는 글을 보았다(캐나다 영주권자가 미국에 눌러앉지 않을 테니). 그래서 나도 국경에 내려서 영주권과 여권을 보여주니 당시 미국의 Officer가 캐나다 비자 연장을 위해 국경을 넘은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나한테도 뭐라고 물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서 잘못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라는 종이를 주었다.
처음에는 이제 다되었으니 다시 달려보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건넨 종이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종이를 읽어보니 자발적으로 캐나다로 돌아가는 것이니 미국 입국 기록이 남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쓰여있었는데, 이대로 남쪽으로 내려가기에는 뭔가 찜찜하여 다시 국경 사무실에 들어가서 우리는 비스마르크로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까 니가 캐나다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냐며 뭐라 했다. 결국 다시 서류 작업을 하고 입국 도장을 받아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첫 육로 여행이었으니 거기까지 갈 수 있었지 정말 다시는 못할 짓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스다코타에 가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거기나 사스카추완이나 고속도로 주변으로 그저 아무것도 없이 평평한 길만 이어질뿐이다(그나마 노스다코타에는 산도 있긴하다). 그나마 사람들이 사우스다코타에는 미국 대통령들 얼굴이 바위에 새겨진 산(Mt. Rushmore)과 배드랜드(Badlands)를 보러 많이들 간다지만 노스다코타에는 정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 LA에 사는 와이프 친구에게 노스다코타에 갔다 왔다고 하니 뭐하러 그런 곳에 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무슨 생각으로 별로 볼 것도 없는 곳을 향해 6~7시간을 달려갔을까 싶다.
그날 주변으로 아무것도 볼 것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그냥 남들이 가는 마이넛이나 갈 걸, 꽤나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비스마르크에 호텔을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길을 달리며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노스다코타에는 해바라기 밭이 매우 많았다는 것과 고속도로 주변으로 엄청나게 많은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이 있다. 어쨌든 이렇게 도착한 비스마르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기했던 점은 아무리 눈을 돌려보아도 아시아 사람은 정말 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사실 뜬금없이 노스다코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당시에 썼던 여행기를 옮겨오기 위함이다. 평생 다시는 못 갈 곳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대로 글을 버리기가 아쉬워 옮겨본다. 당시에는 혼자였던 우리 첫째 딸이 사진에서는 (지금에 비하면) 완전 아기여서 새삼스럽다.
(2015년 8월 6일 작성)
이제 살다 살다 별 곳을 다 가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노스다코타의 비스마르크이다.
지난주 연휴를 맞이하여 노스다코타의 주도인 비스마르크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차로 6시간 정도 거리인데 국경을 통과하고 하면 7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처음에는 조금 더 가까운 마이넛에 다녀올까 했지만 연휴가 4일이라 조금 더 큰 도시에 가보고자 그곳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가기 전에 살펴본 정보로는 인구가 10만 명 정도의 도시이며 리자이나에 비해 인구가 절반도 되지 않지만 동물원, 박물관, 사이언스 센터까지 있을 것은 다 있는 것 같아서 흥미가 생기는 도시였다.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런저런 과정에 시간이 소요되어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그래서 비스마르크까지 한 번에 가지 못하고 중간에 마이넛에 들러 밥도 먹고 쇼핑몰도 구경하고 다시 출발하였다. 그런데 마이넛은 인구가 4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도시이지만 도로나 건물 등의 상태가 우리 동네보다 나았다. 역시 미국은 시골도 다르다고나 할까나.
다시 열심히 길을 달려 비스마르크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지고 말았다. 첫날은 잘 자고 둘째 날부터 동물원, 사이언스 센터 그리고 박물관 등지를 구경하였다.
사실 마이넛을 제쳐두고 비스마르크를 선택한 이유는 사이언스 센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서 사이언스 센터 연간권을 구입하였는데 이곳도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막상 가보면 조그마한 규모에 깜짝 놀라게 되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곳에서 2시간 넘게 놀았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스다코타에 가보겠냐만은 가까운 김에 가 본 소감은 다음과 같다. 캐나다는 우리 동네와 같이 대평원(Prairie) 한복판에서도 중국인, 인도인, 무슬림, 흑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국경을 넘고 나면 95% 이상이 백인들이다. 여행하는 동안 인도인이나 무슬림은 한 명도 보지 못했고, 동아시아 사람은 호텔에서 미네소타에서 온 한국 가족 하나와 두 어명의 국제결혼한 커플들을 보았을 뿐이다. 흑인 또한 많이 없었고 Aboriginal 사람들은 간간히 보였다.
대학 친구의 친형이 국제결혼을 하여 지금 사우스다코타에 계시는데, 예전에 들어보니 몇 년 살면서 아시아 사람을 딱 3번 만나봤다고 했다.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보니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독일이나 Russian-German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조사에 따르면 노스다코타주 사람의 50% 이상이 자신은 독일계 후손이라고 했단다. 그러고 보니 도시 이름 자체도 비스마르크(Bismarck) 아니던가! 실제로 도시 이름은 19세기에 독일에서 투자를 유치하고자 그랬단다.
하루 이틀 구경 가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유색인종이 살기에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불친절하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폐쇄적인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소감으로는 비록 미국 시골에 갔다 왔지만 미국은 시골도 인프라 스트럭쳐가 좋은 것 같다. 도로도 깨끗하고, 건물들도 번듯하고, 인구에 비해 쇼핑몰들의 규모도 크고 확실히 돈이 많은 나라이긴 한가 보다.
밤에는 보이지 않는 번호판 (0) | 2020.03.09 |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저스틴을 저스틴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0) | 2020.01.23 |
Quran (코란 혹은 꾸란) (3) | 2020.01.17 |
왜 캐나다의 공항코드는 'Y'로 시작을 하는 것일까? (0) | 2020.01.14 |
류현진 계약 다음 날의 로저스 센터 (2) | 2019.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