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새에는 별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살 때는 주로 도시에 살았으니 보이는 새들이라고 해보아야 참새나 비둘기, 또는 까치가 보이는 정도였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캐나다에 오게 된 이후에는 주변에 보이는 새들의 종류는 늘었지만 그래도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캐나다 생활 초반에는 오히려 새에 대한 증오가 생겼다. 그 이유는 첫째로 녀석들이 트램펄린이나 데크에 끊임없이 똥을 싸놓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내가 열심히 뿌려놓은 잔디 씨앗을 열심히 먹어 치워 버렸기 때문이고, 셋째로 봄, 여름이면 새벽 5시도 되기 전부터 엄청나게 시끄럽게 울어댔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버드 워칭(Bird Watching)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가끔씩 아주 희귀한 새들이 눈에 띈다던가 하는 일이 그렇다. 그러고 보면 은근히 새들의 세계는 참 다양하고 신기했다. 새들의 종류도 참 많거니와 울음소리도 참 다양하다. 모르고 들었을 때는 시끄럽기만 했는데 새들마다 내는 소리가 달라서 그것들을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참 재미있을 것이다(그래도 새벽에 우는 새는 아직까지도 시끄러기만 하다).
그리고 책에서나 보던 새들을 직접 보게 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3년 전 겨울 라디오에서 북쪽에 살던 흰올빼미(Snowy Owl)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여 남쪽의 도시들에서도 자주 보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을 하고 가는데 정말 하얀색의 올빼미가 나무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도 그랬을 걸 아쉽다.
또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볼 수 있는 블루제이(Blue Jay)도 볼 수 있는데 이 녀석도 참 멋있다. 류현진이 속해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스코트와 정말 똑같이 생겼다(그런데 과연 류현진은 올해 토론토에서 공을 던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는 아직까지 블루제이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만 이 녀석을 직접 보았다. 만나면 꼭 사진을 찍으려고 벼르고 있는데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최근에 이 블루제이와 새깔만 다른 레드제이(Red Jay)를 두어 번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캐나다 전역에 걸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새는 바로 로빈(Robin)이 아닌가 싶다. 캐나다 전역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도 사는 녀석으로 알고 있는데 배 부분이 갈색이고 알이 청록색인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캐나다의 커피 체인점 중에 Robin's Donut라는 곳도 있다. 대체적으로 팀 홀튼스(Tim Horton's)와 비슷한데 뭔가 약간 모자라는 그런 느낌의 가게였다. 예전에 살던 리자이나에 몇 군데 가게가 있어서 회사 사람들과 두세 번 가보았다. 하지만 이사를 와서 보니 주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 서부 캐나다에만 있는 가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같은 온타리오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15시간 정도 걸리는 썬더베이(Thunder Bay, ON)에서 처음 시작된 집이라고 한다. 썬더베이 서쪽(마니토바, 사스카추완, 알버타)으로 가게들이 있고 온타리오와 퀘벡을 건너뛰고는 동부 캐나다에 꽤나 많은 가게가 있는 듯하다.
아무튼 작년에는 로빈이 우리 집 차고 창문 위에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풀들을 이리저리 나르더니 어느새 둥지를 만들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여기저기 똥을 싸놓을 것 같아서 싫었지만 자리를 잡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깨끗이 쓰고 방을 빼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두 주 정도 어미새가 알을 품고 있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기 새들이 보였다. 부모가 번갈아 가면서 먹이를 주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과연 저 둥지에 들어가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새끼들이 커져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새끼들이 집에서 나와서 이제 어미를 따라 집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모두 네 마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 같이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녀석이 먼저 뛰어내리는 식이었다. 이 정도 되니 이제 그동안 새를 싫어했던 나의 마음은 사라지고 녀석들이 가족과도 느껴졌다. 그래서 나중에는 마지막에 남은 녀석도 어서 뛰어 내려서 엄마를 따라가라고 응원을 하게 되었다.
시간은 참으로 빨라서 어느새 1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었다. 이번에도 새들은 바삐 움직였다. 나 또한 바삐 움직여야 했다. 더 이상 새들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둥지를 그대로 놔두면 또 새들이 찾아오겠고 그럼 또 똥을 여기저기 싸놓을 테니 작년에 만들어 놓은 둥지를 치워버려야 했다. 그래서 둥지를 치우고 프레셔 워셔(Pressure Washer)로 청소를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도 로빈들이 똑같은 자리에 또 집을 짓는 것이었다. 작년에 그 녀석들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집이 살기 좋다고 소문이라고 났을까? 더 놀라운 사실은 이번에는 상도의도 없이 바로 옆에 또 집이 지어지고 것이었다.
한 번 집을 짓기 시작한 이상 이것 또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빈이 집을 꽤나 짓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 놈의 COVID-19은 예상치도 못하게 로빈의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로빈들이 집을 지을 때 매우 예민해서 사람이 쳐다보기만 해도 날아가 버린다. 하필 올해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우리 집의 꾸러기 녀석들이 모두 집에 있었다. 그 바람에 사람이 너무 가까이 있다고 느껴졌는지 어느 순간 오지 않게 되었다.
올해에도 로빈들이 같은 장소에다 집을 짓는 것으로 보면서 왜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는 여기다가 집을 짓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예전에 둥지를 지은 흔적이 전혀 없음). 올해의 경우를 보니 아마 전에 살던 사람들은 창문에 블라인드를 설치해 놓지 않아서 로빈들이 올 생각을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막상 로빈이 집을 짓다가 떠나가 버리니 빈집 증후군처럼 뭔가 허전함이 생겼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우리 뒷마당 나무에 로빈이 어느새 집을 지은 것을 발견하였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자기들끼리 이름도 붙여주었다. 어미새는 튤립이(마침 집을 지었을 때는 날씨가 따뜻해서 튤립이 피었다), 새끼들은 각각 로지, 라이트닝 맥퀸, 머드핏이라고 이름 붙였다. 도대체 새끼들 이름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만약 새끼들이 네 마리가 넘을 경우에는 그때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러고 보면 아빠 새만 이름이 없다. 슬프다. 대충 튤립이 남편이라고 부르고 있다.
위의 사진을 처음 찍은 것이 5월 2일이니 3주 정도 알을 품고 있었나 보다. 내가 산책하는 길에 마침 다른 로빈 둥지가 하나 있는데 그 둥지에서는 이미 새끼들이 다 커서 집을 떠났다. 우리 로빈들은 계속 알을 품고만 있는 것 같아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며칠 전부터 부모 새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새끼가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곳에 둥지가 있어서 도대체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보았다.
둥지 위로 손을 올려서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새끼 한 마리가 어미가 온 줄 알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내밀었다. 둥지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몰랐던 나는 엄청 깜짝 놀랐다. 이번에도 어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재빨리 내려와서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다행히 새끼들이 잘 부화를 해서 크고 있었다.
여기 까지라면 해피엔딩이겠는데 오늘 오후에 안타까운 장면을 보았다. 아이들과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나무 아래 무슨 털 같은 것이 엄청 떨어져 있었다. 뭔가 싶어서 가까이서 보니 아무래도 새끼 새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뒤집어 보니 글세 부리랑 턱뼈 같은 것이 보였다.
이럴 수가!
새끼들 중 한 마리가 다른 동물에게 잡아 먹혔나 보다. 뼈만 남기고 다 먹어 치운 것을 보면 날짐승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누가 저기까지 올라가서 한 마리만 잡아왔을까 싶기도 하고. 혹시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서 다른 짐승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았을까 싶다.
저녁에 보니 그나마 다행으로 나머지 새끼들은 무사한 것 같아 보였다. 부모 새들은 새끼가 하나 없어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열심히 먹이를 찾아다녔다.
어쩌면 가슴이 찢어지지만 가슴에 묻어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으로 머드핏은 가고 로지와 라이트닝 맥퀸만 남았다.
끝으로 지난 4월에 뒷마당에서 찍은 로빈 노래 소리이다. 꽤나 노래 소리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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