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6월 들어 점점 상황이 좋아지는지 일도 조금씩 늘었다. 평년 수준은 아니더라도 80~90%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그리고 마침 지하 화장실의 세면대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이번 기회에 바닥과 Vanity(세면대)까지 모두 고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저녁에 서류 일을 마치고 나면 항상 지하에 내려가서 화장실에 매달려 있느라 블로그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다른 지역의 인스펙터 한 명이 출산으로 인하여 2주 동안 휴가를 가는 바람에 무지하게 바빠져 버렸다. 코로나 사태 이후 회사에서 1/4 정도를 감원했기 때문에 우리 팀도 평소보다 3명 정도가 모자랐다(한 명은 퇴직, 두 명은 계약 해지). 그런 상태에서 한 명이 또 빠지니 모두들 불이 나게 바빠졌다. 그 덕분에 나도 집에서 왕복 4시간 거리의 동네까지 검사를 다녀야 했다. 

 

내가 커버를 해주어야 하는 지역은 하필 GTA(Greater Toronto Area) 지역으로 온타리오 코로나 확진자의 70~80%를 차지하는 지역이었다. 물론 GTA도 하도 넓어서 내가 가는 곳에서도 확진자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보다는 사람이 훨씬 많고 익숙한 곳도 아니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해야 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2020년 들어서 처음으로 오버타임도 해야 했다. 그것도 8.5 시간이나(물론 한국 직장 기준으로 보면 이것이 뭔가 싶으실 것이다)!

 

그렇게 3일 동안 일을 하고 4일째 되는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들 녀석이 열이 나는 것이었다. 아주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38.4도까지 올라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내가 모른척하고 여기저기 다니면 말 그대로 슈퍼 전파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이것은 과장이 아닌데 최근 하루에 400~500km 정도 이동을 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에 연락을 하고 모든 검사를 취소하기로 하였다. 

 

막상 걱정이 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이 취소되니 참으로 좋았다. 겨우 며칠뿐이라고는 하여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성격 상 시키면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키는 것 다 하자니 나만 고생하는 것이라 싫었는데 합법적으로 쉬게 되었으니 좋았다. 어쨌든 하필이면 내가 평소에 다니던 곳을 벗어난 후 아들이 열이 났기 때문에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기로 하였다.

 

내가 사는 곳은 지금까지 확진자가 60여 명이고 최근 3~4주 동안 1명 정도 나온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검사장에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여는 시간(오전 10시)에 맞추어 집을 출발하였다. 검사장은 시내 중심부 근처의 오래된 체육관(하키장)이었다. 몇 명이나 있을까 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열기 5분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4명이 줄을 서 있었다. 곧 내 뒤로도 5~6명이 더 줄을 섰다.

 

하키장에 마련된 코로나 검사실. 검사를 마치고 나니 이미 기다리는 줄은 없었졌다.

 

시간이 되자 문이 열리고 한 명씩 입구로 들어갔다. 굳이 쓰고 있는 마스크를 자신들이 제공하는 외과용 마스크로 바꿔 쓰게 하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줄을 서서 접수를 해야 했다. 줄이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나와 아들은 굳이 사람이 많은 쪽에 줄을 서게 했다. 접수하는데 약 20분 정도 걸렸고 접수를 마치자 앉아서 내 차례를 또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면서 보니 다른 쪽에 줄을 섰던 사람은 접수와 검사 모두 조금 더 빨리 진행되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싶었지만 뭐 알 수가 없으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몇 분 더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왔고 접수창구 뒤로 마련된 책상으로 안내되었다. 이러한 책상이 8개 정도 있었는데 5개 정도 사용되는 듯하였다. 이 책상들도 증상에 따라 나누어서 검사자를 받는 듯했다. 검사를 받으면서 보니 심하게 기침을 하는 사람은 뒤 책상으로 안내되었는데 나를 담당하는 사람과 달리 온갖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되었는데 우선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어디가 아픈지, 접촉한 사람은 누구인지, 기저질환이 있는지 등등. 그다음은 내 차례였는데 나에게도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았다. 나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종이를 가져와야 한다면서 아들에게 사용했던 서류와는 색깔이 다른 서류를 들고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최근 어디를 다녀왔는지, 최근에 의료 기관을 다녀온 적이 있는지 등등. 

 

모든 질문이 끝나자 (이미 10시 45분이 지나있었다) 드디어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는 익히 들었던 대로 끔찍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울고 불고 난리를 친다고 하였고, 한국에서 검사를 받았던 지인은 면봉이 뇌에까지 들어간 것 같다고 하였다. 심지어 우리를 담당했던 사람은 'I can guarantee you that it will be very very unpleasant'라고 하였다. 

 

그래도 아이를 먼저 받게 하는 것이 낫다고 들어서 내가 아들을 잡고 녀석의 코에 면봉을 집어넣었다. 20초 동안 넣어야 했는데 아들이 중간에 '잉 잉'하면서 울었지만 면봉이 들어가야 할 곳까지 다 들어간 것이 맞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그냥 별 일 없이 끝나버렸다. 검사가 끝나고 가져갔던 사탕을 입에 넣어주니 녀석은 금세 행복해졌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면봉이 코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뭐 뇌까지 닿을 것 같다는 말은 무슨 X소리일까 싶을 정도로 그냥 따갑고 말았다. 캐나다와 한국의 검사 방법이 다르던지 아니면 그 말을 한 사람의 엄살이 심한 건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또다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아들 녀석도 언제 열이 난 것인지 싶을 정도로 멀쩡하게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다시 녀석의 열이 38.7도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어디에서 옮았을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등. 다행히 이번에도 해열제를 먹자 다시 열이 내려갔다.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검사 결과를 알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검사를 받으면서 물어보니 킹스턴에서는 하루에 150~170명 정도가 검사를 받는다고 하였다. 항상 우리 동네의 확진자 수를 유심히 살피는 와이프에 따르면 보통 하루에 100~200명의 검사 결과가 추가되고 또 그 정도의 결과가 Pending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충 하루에 한 검사를 모두 모아서 밤에 돌려본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9시 정도가 되자 검사 결과가 조회가 되었고 다행히 아들과 나 모두 음성이었다. 나와 와이프 모두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한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온타리오에서는 코로나 대응을 그리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주정부에서 이것은 또 뭔가 싶은 것을 가지고 나왔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버블(Bubble)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비눗방울 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자기 가족과 주변에서 몇 명 이내의 사람들과 버블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버블)들과는 사회적 거리를 지키라는 것이다(정말 솔직히 누가 이런 것을 지킬까 싶다). 

 

온타리오에서는 다른 주에서부터 사용하기 시작된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캐나다 최대의 주답게 본인들만의 표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Social Circle이라는 말을 들고 나왔다. 결국 Bubble이나 Social Circle이나 똑같은 말인데 솔직한 말로 둘 다 X소리가 아닌가 싶지만 Social Circle이 조금 더 X소리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Social Circle이 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대체 아래의 세 그림들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Social Circle은 10명을 넘을 수 없다고 되어있으니, 다른 동그라미들을 합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화살표는 또 무슨 뜻인지... 

이것의 핵심은 같은 Social Circle 10명은 Social Distance를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10명 모두 한 Circle에만 속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Circle에 속해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안 하고 다른 Circle에 들어가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은 5명인데 딸의 친구네와 플레이 데이트를 하려면 그 가족과 Social Circle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딸은 그 친구랑만 놀아야 한다. 그리고 그 친구 가족이 우리 몰래 자기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반칙이다(우리 집 5명 + 그 집 4~5명이라고 가정). 

 

이게 무슨 X소리란 말인가.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하여 살펴보니 트위터를 살펴보니 '2020년판 친한 친구 10명 뽑기', '시댁과 친정 중 어디를?', 'X소리', '와인 마시고 생각해 낸 것은 아닌가(이것을 발표한 사람이 전날 코로나 테스트 후 바로 술을 사러 가서 시끄러웠음)' 등등의 반응이 보인다.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하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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