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2017년 11월 16일 작성

 

 

내가 한국에서 처음 정유소에 검사(Inspection) 엔지니어로 입사를 하고 나서 제일 먼저 맡았던 일이 바로 TA 검사 때 PSV(Pressure Safety Valve)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당시 입사 바로 직전에 무릎을 다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때문에 6개월 정도는 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TA 검사 당시 팀에서 내게 맡긴 일이 바로 PSV Shop에 있으면서 공장에서 떼어 온 PSV를 검사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Training 의 일환으로 PSV에 관련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했는데 그 덕분에 나름대로 PSV 에 대하여 많은 공부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내가 담당한 공정에서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요구하는 법적인 검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서 PSV와 관련된 스터디를 많이 했는데 그 덕분에 법적인 요구 사항도 꽤나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PSV의 선정이나 용량과 같은 Design 관련된 사항은 잘 모르지만 그것의 종류, 검사하는 방법, 법적인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 TSASK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리자이나와 사스카툰에 있는 모든 인스펙터가 모여서 세미나를 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세미나는 1년에 2번씩 리자이나와 사스카툰을 번갈아 가면서 모든 인스펙터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주로 ASME Code Update 사항을 공유하고 그동안 검사를 하면서 발견했던 특이한 사항들도 공유하는 그런 교육적인 자리였다.

 

마침 그 세미나에서 논의된 사항 중의 하나가 바로 PSV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사스카추완주 내의 정유 공장이나 Oil Field에 설치된 PSV에 Inlet 배관과 Outlet 배관을 격리할 수 있는 밸브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PSV는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장치이다. 그런데 만약 이 PSV를 격리할 수 있는 밸브가 있다면 혹시 이것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잠겼을 때 공장에 문제가 생겨 압력이 급격하게 증가하면 PSV 가 그 압력을 배출하지 못하고 큰 폭발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정유소나 Oil Field 를 운영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 격리 밸브가 꽤 필요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PSV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 이것을 떼어내어 수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격리밸브가 없으면 운전 중 떼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약간 놀랐던 것은 오히려 이 PSV 관련된 법률은 한국이 훨씬 더 선진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캐나다의 법적 요구 사항이 한국보다 높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이 PSV에 대해서는 캐나다가 뒤쳐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스안전공사나 다른 기관에서 현장 감사를 나올 때마다 매번 이러한 격리밸브가 있나 없나 확인을 하기 때문에 관리가 아주 철저하다 (적어도 내가 일했던 곳에서는).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리자이나에 있는 정유소를 비롯하여 무지하게 많은 곳에서 이 격리밸브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TSASK에서 이것을 관리할 수 있도록 Control Program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발표자의 요지였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이 프로그램 개발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당시 나는 회의 내내 별 말없이 앉아 있던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PSV에 대해 지식이 있다고 생각해서 손을 들고 그 일에 지원을 하였다.

 

이 세미나를 했던 것이 2015년 5~6월 경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2016년 1월 1일 이 프로그램 도입을 목표로 회의도 하고 관련 절차서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ASME BPVC Section XIII Appendix M에 나와있는 것을 바탕으로 Control Program을 개발하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PSV Inlet / Outlet에 격리밸브를 설치하려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Owner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절차서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Appendix M 이 상당히 복잡하게 써져있기 때문에 절차서를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Appendix M에서 제시하고 있는 각각의 상황들에 대한 예제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등 최대한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심지어 프로그램 설명 동영상을 찍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냥 프리젠테이션에 목소리를 삽입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캐나다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준비 과정에서 시간이 참으로 오래 소요되어 프로그램의 도입 시기가 점차 늦추어졌다. 결국 2016년 1월에 도입을 하려던 이 프로그램은 내가 TSASK 나가는 2016년 8월에도 도입되지 못하였다. 어쩌다 보니 절차서나 프리젠테이션 대부분 내가 만들게 되었는데 지난번 Refinery Audit과 같이 끝을 보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Control Program 도입과 정착이 잘 되었으면 싶었다. 왜냐하면 캐나다의 다른 어느 기관에서도 모두들 PSV 격리밸브는 Appendix M에 따라서 설치해야 된다고만 했지 실제로 그것에 따라 규제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업계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ABSA에서조차! 그래서 이것이 잘 도입되면 타 기관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의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TSASK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페이지가 생겨있었다. 내가 작성했던 문서들이 보여서 반가웠다. 과연 이 프로그램의 도입이 잘 되었나 궁금하다. 아마 이 또한 흐지부지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유소나 Oil Field 회사 입장에서는 이 격리밸브를 관리하는 절차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테니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다.

 

무튼 여기서는 당시에 만들었던 자료를 링크를 거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놀랍게도 아직도 링크가 깨지지 않았다!

 

Information Papers

IP-2016-07-07 Application for the Registration of a Pressure Relief Path Stop Valve Control Program
IP-2016-07-08 Pressure Relief Path Stop Valve Control Program Manual Requirements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