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2017년 11월 18일 작성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캐나다에서도 압력용기나 보일러에서 폭발, 화재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즉시 관련 기관에 보고를 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들을 관리하는 기관에서는 왜 그러한 사고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조사하고 앞으로는 어떻게하면 좋을지 리포트를 작성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공장 외부에서도 쉽게 눈치챌 수 있을만한 큰 폭발이나 화재 사고를 제외하고 경미한 사고나 화재들은 기관에 보고 없이 알아서 처리를 하고는 했다. 심지어 한밤 중에 컴프레서가 폭발하여 조그마한 화재가 발생한 사고가 났지만 그냥 재빨리 청소를 하고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내가 캐나다에서는 정부 관련 기관에서만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기업들은 얼마나 누락없이 보고를 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TSASK에서 일할 때 이러한 사고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쉽게도 우리와 같은 기관의 Inspector 들이 제대로 된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로 사고가 발생한 장치나 공정에 대한 지식이 적기 때문에 조사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두 번째로는 왠만큼 큰 사고가 아니고서야 그 사고를 철저하게 조사할 만한 시간이나 지원이 부족하다. 마지막으로는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 자체가 보일러나 압력 용기 검사와는 완전 다른 세계의 일이기 때문에 Trouble Shooting이나 Damage Mechanism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기존에 TSASK에서 작성된 사고 보고서들을 보니 대부분이 사고가 발생한 회사의 자체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되거나 아니면 다른 3rd Party 회사에 용역을 주어 작성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우리의 Chief Inspector는 더 높은 수준의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서는 내가 참여했던 사고 조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리자이나에서 40 ~ 50분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Potash Mine Plant가 건설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냉방이나 냉각의 용도로 사용되는 Chiller라는 장치에서 균열이 발생하였다. 다시 간단히 말하자면 주물로 만들어진 열교환기의 Cover가 깨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열교환기의 실제 사진

 

이 사고 조사에 참여했을 때 나는 TSASK에서 일을 시작한 지 겨우 2~3달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캐나다의 모든 것 그리고 캐나다 사회생활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낯설었던 때이다. 그런 상황에서 함께 사고 조사를 했던 사람이 바로 문제의 그 '이란 아저씨'였다.

 

이 아저씨가 아쉽게도 말은 무척이나 많지만 이러한 Trouble Shooting을 해본 경험은 별로 없는 듯했다.말로는 계속 '열린 마음으로, 다각도로 사고를 바라보고 원인을 파악하자'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미 본인 스스로가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정해놓고 계속 그것이 맞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정유소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Trouble Shooting을 하는 일이 있다. 당시의 경험을 통해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사고를 조사하려면 Flow Meter나 Pressure Gauge와 같은 공정 정보의 분석이 필요한데 이 아저씨는 이러한 정보를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러면서 TSASK에서 처음에 누가 설치 검사를 했는지, Design 등록은 누가 했는지를 걸고넘어지는 것이었다. 이 아저씨는 대놓고 그런 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한동안 좋지 않았다. 설치 검사를 했던 Inspector 가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얼마나 나쁘겠는가? 돌이켜 보면 그 아저씨는 정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이것은 순전히 운전상의 문제로 발생한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어찌 되었든 결론을 내는 리포트는 써야 하는데 어느 순간 리포트는 내가 쓰고 있었다. 결국 내가 쓰는 리포트인데 내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결론으로 해서 리포트를 쓰자니 정말 힘들었다. 그 아저씨가 주장하는 결론은 이 시스템에 Flow Rate을 조절해 주는 Limit Control이 없는 상태에서 장치에 너무 많은 유량이 흐르면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Limit Control이라는 것이 어디 Code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쓰여있는 것도 아니고 Cooling Water Line에 설치할만한 것도 아니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다가 리포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마지막 주에 그 회사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 그때 당시 나는 '나는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는 식의 생각이 들던 때였다. 그래서 이란 아저씨가 뭐라고 하든 그냥 듣고만 있었다. 스피커폰 너머에서 담당자가 이야기하기를, 이 장치는 맨날 운전되는 장치가 아니라 가끔씩 운전이 되는 장치이고 당시에 공정에 문제가 있어서 Cooling Water Line이 죽어있었다. 그 Line을 다시 살리는 과정에서 갑자기 이 장치에서 소리가 나며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열교환기의 Outlet의 밸브는 잠겨있었는데 Inlet의 밸브는 열려있던 중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었고 사고 발생 당시 공정 운전 기록을 보면 이 열교환기에 들어가는 유량이 짧은 순간에 일시적으로 매우 높아진 기록이 있었다. 사고 조사를 시작한 지가 한 달은 넘었을 때인데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이런 정보를 듣게 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처음부터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 보고 앉아서 생각을 좀 했으면 훨씬 빨리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이 사고의 결론은 다시 운전을 하는 과정에서 밸브가 잠겨있어서 해머링과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내려졌다. 개선점으로는 장치의 재가동 시 밸브 개폐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결론이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란 아저씨의 말도 안 되는 결론보다는 나름대로 수긍이 될 만한 결론을 만들 수 있어서 그저 다행이었다. 그래도 사회생활은 사회생활인지라 리포트에는 그 아저씨의 주장을 1번 원인으로 적기는 하였다.

 

이 일을 하면서 배운 한 가지는 Incident Investigation이야 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일이구나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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