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2017년 11월 5일 작성

 

 

내가 처음에 TSASK로부터 합격 연락을 받은 이후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궁금했던 것이 과연 Chief Inspector 아저씨가 나를 왜 뽑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캐나다에 온 지 겨우 3달밖에 안 된 사람이었고 캐나다에서 일해 본 경험도 없었고 캐나다에서 나의 레퍼런스도 별로 없는 상태였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 나를 뽑았을까 참으로 궁금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이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비록 그 아저씨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마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던 것이 있다.

 

리자이나에는 정유소가 하나있는데 소유 형태가 참으로 특이한 회사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1930년대에 농부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유류품을 공급할 목적으로 정유소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협동 조합 형태의 소유가 계속 이어져서 현재도 Co-op Refinery 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정유소는 하루에 원유 14.5만 배럴을 처리하는 규모이다. 우리 나라의 4대 정유소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크기이고 아마 SK의 인천공장과 비슷한 규모일 것이다. 그래도 조그마한 규모에 FCC Unit 도 있고 Coker Unit 도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Refinery에서 4~5년 사이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여서 안전 관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바로 앞의 글에서 설명한 QMS(Quality Management System)를 이곳에서 도입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Audit 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TSASK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을 담당하던 사람이 2명있었다. 1명은 엔지니어 출신의 젊은이로 괜찮은 친구였는데 여기 말고도 담당하는 일이 많아서 바빴고, 1명은 오래된 할아버지 Inspector로 보일러 업계 출신이라 정유소 쪽 일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했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입사지원을 했을 당시 TSASK에서 이 정유소를 담당할 사람이 추가로 필요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정유소 검사 경력이 7~8년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버타에서 훨씬 좋은 조건으로 돈을 많이 받으면서 일반 기업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굳이 리자이나까지가서 사기업보다는 월급도 적게 받는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내가 틈새시장을 비집고 취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 회사를 들어갔을 때가 2015년 4월이었고 처음 Chief Inspector 아저씨와 이야기했을 때도 여기 정유소를 담당하게 될 것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계속 다른 일만 했다. 그러다가 2016년 초가 되어서야 나와 기존에 이곳을 담당했던 그 젊은이를 불러서 여기저기에서 이 정유소 안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으니 올해에는 여기에 집중을 해보자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가 정유소 관련 검사 업무에 가장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쪽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당시에는 의욕에 차서 이 정유소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정유소를 담당하고 나서 처음 시작했던 일은 그곳에서 발생했던 과거의 사고 리포트들을 읽어 보는 것이었다. 당시 본 리포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Pipe에서 부식이 일어나서 Leak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그 회사에서 나온 리포트의 결론은 이러이러한 부식이 일어나서 Pipe가 얇아졌고 하필 Leak 가 발생한 쪽에 Spec 보다 얇은 Pipe가 설치되어서 Leak가 예상보다 더 빨리 발생하여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십년 전에 Spec 보다 얇은 Pipe를 사용해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결론보다는 이 배관에서 발생한 부식이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부식이니 처음부터 그 부식을 효과적으로 제어했어야 이러한 화재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리포트를 검토한 다음으로는 본격적으로 이 회사에 QMS 적용을 위하여 이런저런 서류를 검토하였다.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QMS 매뉴얼을 검토하는 것과 정유소에 설치된 각 장치별 검사 주기가 적절한지를 살펴 보는 것이었다. 사스카츄완에서는 법으로 High Pressure Boiler는 1년마다Pressure Vessel은 적어도 5년 마다 검사를 해야 했다.그런데 정유소 특성한 어느 장치는 3년마다 진행되는 TA 때마다 검사를 했고 어느 장치는 6년 마다 검사를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정해진 검사 주기를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과연 각 장치들의 검사 주기가 적정한지 살펴보기 위해서 그 공장에서 최근 5년 동한 진행한 TA의 검사 리포트를 모두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른 일도 하는 도중에 이러한 일을 해야해서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소요되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정유소의 TA Report를 읽어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장치별 이력을 보면 부식에 대한 공부도 많이 되기 때문에 언제 이러한 자료를 읽어 볼 수 있을까 하여 열심히 검토했다.

 

공정별로 모든 리포트를 읽은 후 각 장치별로 검사 주기가 합당한 지혹은 추가로 무슨 자료가 필요한지를 요약해 나갔다. 그런데 그 공장에 설치된 장치의 절반 정도를 검토하던 중 날벼락 같은 일이 발생하는데 바로 내가 해고 통지를 받게 된 것이었다.

 

그 통지를 받자 당연히 그렇듯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다. 그래도 나가기 전까지 꾸역꾸역 내가 검토했던 곳까지는 요약을 해서 그 젊은이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나간 이후로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지만 아무래도 내가 요약했던 것은 별로 쓸모가 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 직접 TA Report 를 모두 읽어보지 않는다면 아마 그 요약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잘했든 못했든 이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그러지 못해서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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