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2018년 4월 12일 작성

 

 

캐나다에 온 지 겨우 3년 반(이제 5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두 번이나 주를 이동하여 총 세 주에서 살아봤다. 결혼 이후 여수에서 시작하여 서울을 거쳐 에드먼튼, 그리고 리자이나를 거쳐 킹스턴까지 초장거리 이사만 여러 번이라 이사는 아주 지긋지긋하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2014, 2015, 2016년 연속으로 세금 신고 시 거주하는 주가 달랐다. 그런데 CRA(Canada Revenue Agency)에서 이것이 이상했는지 어느 날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리저리 해서 에드먼튼에서 시작하여 리자이나로 갔고 또 이리저리 해서 킹스턴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는지 CRA에서도 알았다고 답이 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주 별로 받을 수 있는 혜택(Benefit) 때문에 뭔가 의심을 받은 것 같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로 이민이나 유학을 올 때 우선적으로 토론토나 밴쿠버 같은 대도시를 고려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도시에서 너무 치열하고 궁핍하게 사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보다 규모가 작은 도시라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우리 집에서는 나의 이러한 성향이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나의 일본 교환학생 시절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도쿄와 후쿠오카 지역의 학교를 두고 고민을 하였는데 후쿠오카 학교의 모집 인원수가 많아서 그곳을 선택했다. 나중에 보니 5명 모집에 2명이 가게 되었는데 아마 미달이었나 보다 (당시는 교환학생의 초창기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같으면 미달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어쨌든 후쿠오카에서의 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너무 사람이 많지 않으면서도 있을 것은 다 있어서 좋았다.

 

그러한 경험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캐나다 이민을 위하여 도시를 선정할 때 처음부터 토론토나 밴쿠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캘거리와 에드먼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도시 주변에 정유소들이 있는 에드먼튼을 최종적으로 선택하였다.

 

결국 에드먼튼에서는 겨우 5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하였지만 기억으로는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도시의 재정이 넉넉해서 그런지 내가 지금껏 살아 본 그 어느 곳보다 도서관과 레크리에이션 센터(Recreation Centre)가 훌륭하였다. 그리고 한국 슈퍼들도 몇 개 있고, IKEA도 있고, 그만하면 아주 괜찮은 곳이었다.

 

 

그다음에 살게 된 곳은 사스카추완의 리자이나였다. 이사를 위하여 에드먼튼에서 처음 그곳에 답사를 갔을 때는 약간 심란하였다. 사스카추완은 알버타보다 재정이 열악한지 도로나 건물들이 확실히 낡아 보였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평평하여 심심했고 바람도 엄청 불어서 무지하게 추운 곳이었다. IKEA는커녕 코스트코가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살아보니 살만했다. 뭐 교육이나 의료가 다른 지역보다 부족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직장이 있고 친구들이 생기니 은근히 정이 들었다. 1년 넘게 살다 보니 직장도 안정된 것 같아 집도 마련했다. (독립하여) 처음으로 남의 집이 아닌 내 집에서 살아 보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뒷마당에 잡초도 뽑고, 집도 조금씩 고치면서 살다 보니 이 리자이나에서 오래 살아도 될 것 같았다.

 

행복한 생활도 잠시, 집을 산지 겨우 3개월이나 되었을까.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 통지를 받게 되었다. 내 고용 계약서에 써져있는 'Permanent'라는 말과 내가 노조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너무 믿었나 보다. 캐나다 고용시장에서 'Permanent'라는 말의 뜻은, 별 일이 없으면 정년 제한 없이 일을 할 수 있지만, 별 일이 있으면 집에 가야 한다는 것임을 그때까지는 몰랐었다. 캐나다의 노조는 짬을 많이 먹은 사람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지만 짬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아무튼 그 덕분에 갑자기 킹스턴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리자이나에서 킹스턴까지 약 3,0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에드먼튼에서 리자이나로 이사를 갈 때보다 심란하지는 않았다. 이사를 하기 전 리자이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킹스턴에 House Hunting을 하러 왔을 때 보니 동네에 있는 몰에 H&M이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은 살만한 곳이라고 확신하였다.

 

온타리오에 와서 보니 온타리오는 이런저런 장점이 많은 것 같다. 킹스턴만 보더라도 인구는 12.5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의료나 교육이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도 가까워서 주말에 놀러 가기도 편하다. 미국도 가까워서 여기저기 놀러가기도 좋다. 집값도 아직까지는 합리적이라서 GTA(Greator Toronto Area)라면 꿈도 못 꿀 가격에 뒷마당 앞마당이 딸린 집을 살 수 있다. 그래도 재미있는 사실은 막상 여기에 살고 있는 많은 분들이 토론토나 밴쿠버 같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캐나다 관련 카페 같은 곳에서 캘거리는 너무 시골이라 가기가 꺼려진다고 하는 글을 보았다. 그런 반면에 리자이나에서 일할 때 2~3시간씩 운전하고 가다가 기름을 넣으려고 인구가 이삼천 명 정도 되는 조그마한 동네의 주유소에 들리면 많은 경우 주인아저씨가 한국 사람이었다. 누구나 토론토, 밴쿠버에서 시작하여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면 누구인들 그러한 시골에 있고 싶겠냐만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래전에 읽었던 김연수 소설에서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 본 까마귀, 다시는 뜰로 내려앉지 않는 법'이라는 문구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시작은 적당한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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