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위글즈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지난 2015년, 딸아이와 친구의 엄마가 와이프에게 위글즈가 공연을 하는데 가자고 했을 때만 해도 말이다. 위글즈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캐나다에 와서 공연을 보러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누구인지도 모르는 공연인 데다가 티켓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아서 와이프랑 딸아이만 공연에 보내고 나는 차에서 기다리면서 회사 일을 했다. 밖에서 기다리는데 공연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놀랐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니 공연이 끝났는데 와이프 말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인기가 많은 사람들인 것 같다고 하였다. 공연을 보고 있는 애들이 모두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했다. 심지어 부모들도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했다.
신기하다 싶어서 나중에 찾아보니 위글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된 밴드로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도 그들의 DVD를 여러 편 찾아볼 수 있었는데 공연에서 본 멤버들이 아닌 아저씨 4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은 무슨 일일까 싶어 찾아보니 그룹의 역사가 1991년부터 시작되었고 2013년에 한 명의 멤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퇴하여 새로운 멤버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딸아이의 나이가 어느새 만 4살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이상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우리는 멀어지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2017년. 만 1살이 지난 둘째 녀석이 어느 날 위글즈를 알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TV에서 나오는 그들의 방송을 봤던 것인지 아니면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그들의 CD를 들어본 것인지.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이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시도 때도 없이 두 주먹을 두드렸다는 것이다(왜 두드리는지 모르시는 분들은 링크 영상 참고). 그들의 'Hot Potato'라는 노래를 틀어 달라고. 그러면 나는 CD플레이어로 달려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그들의 앨범을 플레이해 주었다. 그러면 녀석은 일어서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두 주먹을 두드렸다.
나는 그때까지 이 위글즈가 이렇게 위대하고 전염성이 강한 그룹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처음 듣기에는 그냥 애들 노래라서 유치한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나도 몰래 '핫 포테이토 핫 포테이토...'라고 하고 있다던가 '두 더 프로펠러, 두 더 플로펠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녀석은 정말로 한 가지에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The Best of The Wiggles'라는 앨범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또 빌려서 들었다.
이들의 음악이 대단한 것이 비록 가사와 음악은 단순하지만 전혀 유치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가사가 단순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따라 부르기 참 쉽다. 그리고 음악도 훌륭하여 중독성이 강하다. 이 정도면 일반 성인들의 밴드에 비해서도 전혀 수준이 낮지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위글즈의 초기 멤버들 모두 락 밴드에 속해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다음 두 가지 음악을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출처: Wikipedia).
1. 오스트레일리아 락 밴드 The Cockroaches(앤소니와 제프가 속해 있었음) 버전의 'Do the Monkey'
2. The Wiggles 버전의 'Do the Monkey'
아무튼 이렇게 위글즈를 좋아하는 둘째 녀석을 위해서 다시 한번 그들의 공연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모든 가족이 함께. 그래서 2018년 초반부터 몇 주에 한 번씩 그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투어 일정을 살폈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 캐나다 투어를 하는 것 같으니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공연을 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결국 2018년 10월 토론토에서 공연을 한다는 공지를 보자마자 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둘째 녀석이 만 2세가 조금 넘은 2018년 10월. 드디어 우리 가족은 위글즈 공연을 보러 토론토로 향했다.
정말 몇 달 동안 기대했던 공연인데 역설적이게도 우리 둘째 녀석의 위글즈 사랑은 그들의 공연을 직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패착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우선 토요일 3시 공연이 아닌 7시 공연을 예매했다는 것(아마 자리가 없어서 그렇게 한 것으로 기억). 녀석은 보통 8시면 잠이 드는 데다가 7시까지 시간을 때우느라 시내를 돌아다녀서 더욱 피곤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번 공연은 노래보다는 말이 조금 많았다. 만 2살 아이가 보기에는 즐겁고 흥겨운 노래들만 계속 나오는 공연이라면 좋았을 텐데 이번은 중간에 말이 많고 발레나 백파이프 연주 같은 것들이 많아서 아이들에게는 조금 지루했을 것이다. 게다가 캐나다 출신의 어린이 음악 듀오인 스플래쉬 앤 부츠(Splash'N Boots)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그 때문에 말이 더 많아지고, 그들이 잔잔한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분명 자신들의 공연에서는 훨씬 호응이 좋았을 텐데 말이다(이 글을 쓰기 위해서 찾아보니 Splash'N Boots는 내가 살고 있는 킹스턴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조금 더 아껴주어야겠다).
2번이나 위글즈의 공연을 직관한 와이프의 말에 따르면 3년 전 리자이나에서의 공연이 더 신났다고 했다. 아마 이 사람들도 매년 무수히 많은 공연을 하니 조금씩 다르게 하지 않을까 싶다. 맨날 똑같은 노래만 부르면 자기들도 지루하겠지.
놀랍게도 둘째 녀석은 이날 이후 매일 같이 틀어 달라던 위글즈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내심 지겨웠는데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위글즈 노래는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셋째 녀석이 두 주먹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이제 15개월 된 셋째가 어쩌다 위글즈를 알아 버렸다. TV에서 우연히 나오는 위글즈 프로그램을 조금 보여주었는데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Hot Potato'를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끊임없이 틀어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둘째 녀석이 한창 좋아했을 때 듣던 파일들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어서 들려주었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하루에도 Hot Potato, Do the Proppeller, Big Red Car, Say the Dance, Do the Dance를 몇 백 번은 듣고 있다. 나도 몰래 이빨을 닦으며 '두 더 댄스, 세이 더 댄스'를 부르고 있으며 옷을 입으며 '두 더 프로펠러, 두 더 프로펠러'라고 흥얼거리고 있다.
아마 둘째 처럼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가야지 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으려나?
근데 과연 공연이 열릴 수는 있을까?
아래는 위글즈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한 유튜브 링크이다. 무수히 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다음 두 곡 또한 정말 명곡이다.
끝으로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2013년 위글스의 새로운 멤버가 된 에마와 라키는 지난 2016년 결혼을 하였다. 나는 여기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2018년 이혼을 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에마, 라키 모두 정식 위글스 멤버가 되기 전부터 위글스 팀에서 함께 공연을 해왔기 때문에 결혼 전까지 7년을 함께 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공연 스케줄 때문에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고 에마가 건강이 악화되어 2018년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그 사이 결혼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고 6개월의 이혼 조정 기간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2018년 8월 이혼을 발표하였다.
우리가 공연을 봤던 것이 2018년 10월이니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헤어졌어도 항상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고, 웃으면서 공연을 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위글스 공연팀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인생은 밖에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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