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매년 봄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분주히 집을 정리하는 집들이 보인다. 이렇게 정리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겨우내 미루어 두었던 청소와 정리를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집을 팔기 위해서. 한국 부동산 시장과는 달리 여기는 집을 팔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콘도(아파트)라면야 어차피 대부분 비슷할 테니 깨끗하게 정리만 하면 되겠지만 단독 주택이나 타운하우스인 경우 집 내부도 고쳐야 하고, 페인트도 다시 칠해야 하고, 집 안 정리도 해야 하고, 정원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고, 차고도 정리해야 하고... 정말 할 일이 산더미 같다. 

 

게다가 집을 보여주기 위해서 쇼잉(Showing)을 해야 하는데 보통 1시간 정도 집을 비워주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이것 또한 은근히 스트레스이다. 쇼잉을 할 때마다 집을 정리해야 하고, 어디론가 나가서 시간을 때우고 와야 한다. 그리고 쇼잉이 적어도 걱정(집이 안 팔릴까 걱정되니까), 많아도 걱정(귀찮은데 어쨌든 팔릴 때까지 보여주어야 하니까)이다.

 

내 뜻과는 달리 캐나다에 와서 너무 많은 이사와 몇 차례의 집 매매를 한 끝에 이제는 정말 이사도 집 매매도 하고 싶지 않다. 참고로 지난 6년간 3개 주를 옮겨 다니며 총 여섯 번의 이사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세 번의 집 매수와 두 번의 집 매도를 하였다. 

 

 

어쨌든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이 거의 세 달 정도 전부터 정말 열심히 집을 꾸몄다. 딸아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렇다, 그 집은 3월부터 집을 고친 것이다!) 집을 크게 고치는지 트럭으로 자재를 받는 것을 보았다. 얼마 후 끝없는 톱질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나서는 한동안 잠잠하더니 갑자기 몇 주 전 모든 가족이 나와서 앞마당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날씨도 더운데 화단도 정리하고 꽃도 심는 것을 보며, 작년에는 아무것도 안 하더니 올해는 참 열심히 꾸미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드라이브웨이(Driveway, 차고로 들어오는 길) 실링(Sealing)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디까지 집을 꾸미려는 것일까 놀라워하는 사이 그 집 마당에 어느새 집을 판다는 사인이 붙었다. 오호라! 이래서 그렇게 열심히 집을 꾸민 것이구나! 그 집 아저씨는 마지막까지도 최선을 다해서 지붕에 올라 창문까지 닦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며 와이프에게 '창문을 닦는 것도 집을 파는 데 효과가 있을까?'라고 말을 했다. 와이프의 대답은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였다.

 

아저씨가 창문까지 닦는 열정을 보여서일까. 놀랍게도 그 집은 일주일도 안되어서, 정확히는 약 사흘 만에 SOLD 사인이 붙었다. 보통은 집 검사(Home Inspection)도 하고 모기지 승인도 받고 하느라 가계약 후 SOLD 사인이 붙는데 적어도 1~2주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바로 사인이 붙은 것을 보면 꽤나 경쟁이 심했나 보다.

 

이번에는 Jackie 누님이 손쉽게 돈을 버셨다(참고로 이 Jackie 누님은 우리가 처음 킹스턴에 왔을 때 도움을 받았던 Realtor이다). 

 

사흘 만에 붙은 SOLD 사인. 정말 대단하다!

 

집을 빨리 파는 데 성공한 집주인과 Jackie 누나의 기쁨을 (상상 속에서)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이번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는 2008년 금융위기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2008년에는 (미국의) 주택 시장이 붕괴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지, 아니 심지어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이유를 들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2008년 당시에는 주택의 공급은 많았지만 수요가 붕괴되었고, 현재는 주택의 공급은 줄었지만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의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비록 가파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링크에서 약 7:40 부터 주택 시장 이야기가 나온다

 

둘째로는 2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길 잘했다는 것이다.

 

리자이나에서 처음 킹스턴으로 이사 오게 되었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의 하나였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지를 받았는데 집을 산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집을 살 당시에는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모아 다운페이먼트를 지불하였다. 그래서 수중에 현금성 자산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이사는 가야 했고, 가서 렌트를 하고 나중에 또 이사를 하느니 그냥 지금 집을 판 돈으로 가서 집을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사를 가기 전 혼자 킹스턴에 가서 집을 둘러보았는데 생각보다 집 값이 비싸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당시가 2016년이었으니 아직까지는 토론토 주택 시장의 광기가 여기까지는 미치지 않았나 보다. 리자이나에서 살던 동네 집들보다 10~20년 정도 오래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비슷한 크기의 집들이 더 저렴한 것이었다. 

 

저렴하기는 하여도 수중에 있는 돈이 없으니 그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집으로 골라서 오퍼를 넣어 가계약을 하였다. 이제 모기지 승인만 나면 되는데, 이사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거래하던 은행에서 처음 이야기와 달리 모기지 승인이 불가능하다고 통보를 했다. 일단 리자이나를 떠나기는 해야 하는데 돈도 없고, 가서 살 곳도 없으니 이제는 어떡하나 싶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고는 며칠 전 사두었던 로또 맥스뿐이었다. 확률은 비록 약 3,300만 분의 1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아직 로또 맥스 두 장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3,300만 분의 1의 행운이 나에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이런 우리가 불쌍했는지 집주인이 오히려 집값에서 5,000불을 깎아주었고 Jackie 누님은 킹스턴의 모기지 브로커를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또다시 정말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으고, 신세는 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손을 빌려 겨우겨우 다운페이먼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리자이나의 집은 그러고도 몇 달 있다가 겨우겨우 팔렸다). 

 

문제는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집을 장만했더니 이 집이 늘어나는 우리 가족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 킹스턴에 올 때는 이 집에서 3년 살고 이사를 가자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점점 늘어나는 가족과 부족한 화장실 (화장실이 1.5개)로 인하여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와이프의 의견을 따라 2년 정도 만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 집을 마련한 2018년에도 킹스턴의 주택 시장이 심상치는 않았다. 수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우리 집도 내가 샀던 금액에서 10% 정도 가격을 올려서 팔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다섯 명의 가족이 살기에 적당한 집을 괜찮은 가격에 장만할 수 있었다. 만약 와이프 말을 안 듣고 이때 집을 사지 않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왜냐하면 그 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동네 집들의 가격이 미친 듯이 뛰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킹스턴에서 매매되는 주택의 평균 가격 그래프. 어쨌든 온타리오라고 가격이 제정신이 아니다. 출처: https://creastats.crea.ca/board/king

 

예를 들어 2년 전 보트를 집어넣을 수 있는 차고가 있는 엄청난 집이 70만 불 정도에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는지 한동안 팔리지 않다가 리스팅 가격이 조금 내려간 이후에야 SOLD 사인이 붙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웬만한 크기의 집들이면 모두 50~70만 불에 시장에 등장하였고, 대부분 빠른 시간 내에 잘도 팔렸다. 게다가 이번 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시장에 나오는 집들도 줄었기 때문에 더욱 잘 팔렸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2년 전에 70만 불에 팔렸던 집과 비슷한 크기의 집이 백만 불에 시장에 나왔던데 얼마 전에 드디어 팔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 길 건너 단층 건물인 벙갈로(Bungalow) 하우스가 70만 불에 시장에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집을 지나갈 때마다 와이프에게 '저것이 70만 불짜리 집이야!'라고 말을 하고 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살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지난 2년 동안 제정신이 아닌 가격의 집들이 대부분 팔렸기 때문에(비록 얼마에 팔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집도 언젠가는 팔리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도대체 킹스턴의 주택 가격이 이렇게 미친듯이 상승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여기가 살기 좋은 곳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지어지는 집들마다 모두 다 팔리고, 있는 집들은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일자리가 많이 없기 때문에 이민자가 엄청 늘어날 일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어디서 이렇게 집들을 사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의 결론은 와이프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것이다.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