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한국의 정치 제도에 익숙한 나로서는 캐나다의 정치 제도가 약간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상원(Senate)과 총독(Governor General)이 존재가 그렇다. 두 가지 모두 낡은 시대의 유산으로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선 캐나다의 상원은 미국과는 달리 국민들이 뽑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총리(Prime Minister)가 추천을 하여 총독이 임명을 한다. 또한 임기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75살까지 보장된다. 아니 이것이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란 말인가?

 

어쨌든 상원에 어떠한 다른 기능이 있는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법을 통과되려면 순서에 상관없이 상/하원 모두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종종 하원에서 통과된 법을 상원에서 거부하기도 한다(Wiki에 따르면 적어도 1년에 1~2차례는 거부하는 듯하다). 선출직인 하원에서 통과된 법이 모두 옳을 수는 없겠지만 선출직도 아닌 상원이 하원의 법안을 거부하는 것은 약간 이상하게 생각된다. 게다가 상원 의원들도 아주 가끔씩 스캔들이 터지는 것을 보면 그들도 완벽하지는 않은데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상원 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 상원에 못지않게 별로 필요 없어 보이는 자리가 바로 Governor General, 즉 영국의 여왕을 대신하는 총독이 아닐까 싶다. 여왕 자체가 벌써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역할을 할 뿐이니 이 총독은 더더군다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캐나다를 대표하는 총독뿐만 아니라 각 주별로도 Lieutenant Governor라 부르는 주 총독이 존재한다. 1명의 총독에 10명의 주 총독이라니! 그들의 월급과 유지 비용만 해도 꽤나 많은 돈이 소요될 것이다.

 

캐나다의 총독은 총리가 여왕에게 추천을 해서 임명을 하는 식이다. 정확한 임기는 없으나 한 번 임명되면 보통 최소 5년을 일하게 된다. 여왕이 단 한 번도 임명을 거부한 적은 없을 테니 임명하는 방식 자체가 형식적이다. 총독의 역할은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세 가지의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가 총리를 해임할 수 있는 권한, 두 번째가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는 권한(*), 세 번째로 상/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거부 또는 연기할 수 있는 권한이다. 

 

(*) 캐나다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서는 반드시 의회가 해산하여야 한다. 이때 총리가 총독에게 가서 의회를 해산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 총독이 그것을 승인하거나 거부한다. 일반적인 경우 국회의원의 임기 4년이 끝나는 시기에 해산을 요청하나 소수 여당, 국면 전환 등의 이유로 의회를 조기에 해산하고 선거를 실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국의 여왕이 더 이상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듯 총독 또한 대부분 총리의 의견을 따르게 된다. 만약 총독이 총리의 의견을 거부하게 된다면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엄청난 위기일 것이다.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총리의 의견을 어떻게 여왕의 대리인이 거부를 한다는 말인가? 이런 일은 쉽게 발생하지는 않지만 소수 여당일 경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총독이 총리를 해임한 적은 없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975년 총독이 총리를 해임시킨 사례가 있다. 1975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정치는 여러 가지 문제로 혼돈스러운 상황이었다. 당시 총리였던 집권당인 Austraillia Labour Party의 Gough Whitlam가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상원 선거를 다시 실시하고자 총독인 John Kerr를 찾아갔지만 Kerr는 그 자리에서 총리를 해임하고 야당의 지도자를 총리 대행으로 임명하였다.

 

영연방 국가들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전 라디오 뉴스에서 이 사건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연방 국가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총독은 그저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울 때 혹시나 총독이 총리의 의견을 거부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듯하다(2008년 캐나다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어 긴장이 높아졌었다). 본인들 스스로도 구태의연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때때로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꽤나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에서는 이 총독이 다른 이유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다.

 

 

가운데 웃고 있는 여성이 캐나다 총독인 줄리 파예트(Julie Payette)

 

현재 캐나다의 총독은 나사(NASA) 우주인 출신으로 2번이나 우주에 다녀왔던 줄리 파예트(Julie Payette)이다. 그녀는 지난 2017년 10월 트루도 총리가 추천하였다. 지금까지 별 다는 문제는 없었으나 최근 두 가지 스캔들로 시끄럽다. 첫 번째는 자기 사무실 사람들을 학대(Abuse)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사무실에서 근무한 전/현직의 많은 근로자가 신문과 방송에서 그녀와 그녀의 비서가 소리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폭로했다(인터뷰를 들어 보면 지금은 많이 없어진, 한국의 거친 군대식 사무실과 비슷한 수준의 일이 발생한 것 같다).

 

둘째로는 본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총독의 관저인 Rideau Hall의 무리한 리노베이션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 요청으로 지금까지 약 25만 불의 비용이 소요되었는데 정작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저에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 정부(Privy Council Office)에서는 이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에 들어갔지만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줄리 파예트는 별다른 입장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상황이 좋지 않은 저스틴 트루도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어느 나라든 정치 체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낡은 시대의 유산을 잡고 버리지 않으려는 그들이 약간은 부질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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