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캐나다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알러지를 무척이나 신경 쓰기 때문에 Nut Free Zone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특히나 학교에서는 알러지 유발 음식에 대한 관리가 엄격하다. 그래서 견과류가 들어가 있는 음식을 당연히 가져와서도 안되고 친구들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어서도 안된다(*). 딸아이의 증언에 따르면 피넛버터와 맛은 비슷하지만 Nut Free인 와우버터를 학교에 싸가면 선생님이 냄새를 맡아본다고 먹는 것을 허락하는 정도라고 한다.

 

(*) 캐나다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급식을 진행하지 않는다.

 

 

와우버터와 피넛버터. 여기 사람들은 워낙 피넛버터를 좋아해서 팬데믹 초반에 슈퍼마다 피넛버터가 모두 동이 났을 정도이다. 한편 와우버터의 맛은 매우 질은 미숫가루 맛과 비슷하다. 그래서 피넛버터보다 맛은 덜하다. 

 

한편 우리 첫째 아이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알러지 반응이 많이 나타났다. 아주 어렸을 때는 계란을 먹어도 두드러기가 났고, 견과류를 먹어도 두드러기가 났다(이외에도 많은 것에 알러지가 있었는데 나중에 와이프에게 좀 더 물어봐야겠다). 그 결과 와이프는 항상 첫째가 무엇을 먹었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조금씩 커가면서 알러지 반응이 조금씩 줄어들긴 했지만 가끔씩 정확히 무엇에 반응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심한 반응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무엇에 알러지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소아과에 가서 알러지 검사를 했다. 당시에는 피검사와 바늘 검사를 모두 했는데 일부 견과류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당시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먹어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만 일단 견과류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캐나다로 넘어왔고, 캐나다에서는 어디를 보내든지 알러지가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어야 했다. 처음에는 유치원에 딸아이가 견과류에 알러지가 있다고 써서 보냈는데, 일이 아주 복잡해졌다. 유치원에서는 패밀리 닥터가 있는지 에피펜은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리자이나에서 살 때도 병원(General Hospital)에 가서 알러지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또 일부 견과류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고 의사 선생님은 반드시 에피펜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처방받았다. 두 개나 처방을 받았는데 공급이 부족해서 그것을 받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런데 딸아이는 목이 붓는 정도의 심한 알러지 반응은 보인적이 없어서 그 이후에는 에피펜을 처방받지는 않았다(에피펜은 유통기한도 짧고, 캐나다 내에서는 워낙 공급이 부족해서).

 

이때가 만 5세 정도까지였고 만 6세 무렵에 킹스턴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짬을 먹어서 더 이상 학교에 알러지가 있다고 알리지는 않지만 마음속 한편에 들어있는 찜찜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딸아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심한 알러지 반응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딸아이가 즐겨 먹던 마카롱 속에 엄청난 양의 아몬드 가루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나는 혼자서 더 이상 우리 딸아이는 알러지가 없다고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만 7세 정도 되는 때에 중국 음식점에 갔다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심한 알러지가 다시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러지 반응이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와이프는 정말 다양한 고민 끝에 혹시 주방에서 쓰던 도구들에 견과류가 묻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중국 음식에는 캐쉬넛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니.

 

이렇게 9년 정도 실체가 보이지 않는 딸아이의 알러지 때문에 와이프도 많이 지쳤다. 어디 가서 견과류가 들어가 있는 음식을 딸아이 혼자만 먹지 못하니 안타깝기도 했고, 그렇다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과감하게 견과류를 먹여 볼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뉴스 기사를 읽다가 어린이의 알러지에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기사에서 인터뷰를 한 의사가 우리 동네 병원(General Hospital)에서 일하는 의사였다(킹스턴 만세!). 알러지와 면역학에 권위가 있다는 그녀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캐나다에서는 내가 전문의를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패밀리 닥터에게 딸아이의 알러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과거 테스트 결과가 이러하니 다시 한번 전문의를 만나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의 패밀리 닥터는 흔쾌히 연결해 주겠다고 하였고 혹시 알고 있는 전문의가 있냐고 물어봤다(전문의를 연결해 줄 때 항상 아는 전문의가 있는지 물어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먼저 특정 전문의를 연결해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고 Dr. 뭐시기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패밀리 닥터도 그분을 알고 있는지 (결국 같은 병원이긴 하다) 알겠다고 하였다.

 

이것이 정확히 언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말 아니면 올해 초였다. 원래 전문의를 만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번에는 하필 팬데믹이 발생하는 바람에 한동안 병원에서 전혀 연락이 없었다. 다행히 6월부터는 상황이 조금 좋아져서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전화로 진료를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하였고 우선 피검사를 받아 보기로 하였다. 피검사를 받은 이후 한 달 정도 후에 전화로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대부분 괜찮고 헤이즐넛에만 양성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피부검사를 받아 보자고 하였고 드디어 지난주 병원에 가서 피부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오른손에 P(Pollen), N1, N2, N3, N4, N5(넛 1~5), H(히스타민으로 추측) / 왼손에 N6, N7, B(Birch Tree), T(Tree Nut), PN(Pine Nut), C(물로 추측)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견과류에는 알러지 반응이 없고 Birch(자작나무)에 알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피검사와 피부검사 모두 견과류에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견과류에는 알러지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고 하였다. 피검사에서 헤이즐넛에 반응이 있었던 것은 Birch 알러지 때문에 반응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자작나무 꽃가루에 알러지가 있는 경우 Oral Allergy Syndrome이라는 것에 의하여 아몬드, 당근, 사과, 체리, 헤이즐넛, 키위 등에 알러지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들에는 자작나무 꽃가루와 비슷한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 단백질에 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입이나 목이 간지럽거나 입술이 붓는 정도의 알러지 반응이 있을 수 있으나 심각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선생님이 건내 주신 Oral Allergy Syndrome에 대한 안내 자료

 

알 수 없는 것은, 이 OAS는 어릴 때는 별로 발생하지 않다가 주로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알러지 반응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선생님에게 이것을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하는데 견과류에 알러지가 없다는 기쁜 소식에 그만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다.

 

사실 이 날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임을 알았다면 와이프가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받았을 때 피부 검사를 한다고만 들어서 선생님을 안 보는 줄 알았다. 와이프는 분명 피부검사를 하면 의사 선생님이 확인할 것이라고 했지만...

 

뭐,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니 궁금함은 묻어두고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야지. 그래서 딸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견과류가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작나무. 오늘 발견했다. 이렇게 자작나무는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나 보다. 

 

 

끝으로 오늘 글의 제목은 요즘 막내 때문에 매일 매일 몇 시간씩 듣고 있는 The Wiggle의 노래 제목이다. 이 또한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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