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2017년 12월 18일 작성

 

 

지난 글에 이어 잠시 내가 왜 경기가 무척이나 안 좋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해고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는지 조금 추가를 하고 싶다.

 

내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리고 들어오고 나서도 무수히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은 정말 안정적인 곳이다' 하는 말이었다. 회사가 생긴 이래로, 물론 사스카추완 주정부에 속해 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직원을 해고한 적이 없으며 당시 직원들 중에서 나이가 60대는 물론이고 70대인 사람도 몇 명 있을 정도였다.

 

그저 스스로가 더 높은 곳이나 좋은 곳으로 올라갈 마음만 먹지 않는다면 주야장천 다니면서 평생을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통 여기 사람들은 해고당하기를 걱정한다기보다는그냥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에 오래 붙어있는 것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6년 4월부터 약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CEO 아저씨로부터 전 직원 앞으로 메일이 왔다. 그 메일을 지금은 볼 수 가 없어서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대충 현재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고, 앞으로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은퇴 시기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나갈 사람이 있으면 좋은 조건 (Severance)으로 퇴직할 수 있으니 신청 바란다는 것이었다.

 

메일 내용자체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나는 그냥 한국식으로 말하면 '명예퇴직'을 받겠다는 것으로만 이해를 했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정부 관련 기관인 데다가 Non-profit Organazation인 이 회사가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나 싶었다.

 

게다가 이 메일을 받았을 무렵 마침 내가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었기 때문에 드디어 Probation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Permanent 계약서를 받았다. 캐나다에서는 이 수습 기간이 3개월인 것이 일반적인데 이 회사는 특이하게도 수습 기간이 무려 12개월이나 되었다 (회사에서는 사스카추완 주정부 기관은 다 똑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당시 내 생각으로는 나를 해고하려면 수습 기간에 했을 것이고 (수습 기간 중에는 그냥 자르면 되니까) 이제는 그 기간이 끝났으니 해고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메일은 기억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어쨌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CEO 아저씨로부터 이러한 메일을 받은 한 달 정도 후에 이번에는 HR 담당자가 메일을 보내서 회사 내의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퇴직에 관련된 설명회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당연히 이 설명회가 나이 든 아저씨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굳이 이러한 설명회에 들어갈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도 설명회 당일이 되니 노조 측에서도 사람이 나와서 설명회에 참석했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들어가길래 나도 따라서 설명회에 들어갔다.

 

 

설명회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서두에 CEO 아저씨가 회사 경영 상황을 잠시 이야기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 아저씨 말처럼 회사가 안 좋아 보이기는커녕 참 오버를 한다고 생각했다. 재무팀에서 작성한 자료를 보니 앞으로 적자가 예상되는데 그 적자 규모가 60만 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한국 조선사들은 1년에 1조 원도 적자가 나는데 이런 기관에서 1년에 6억 원 적자가 "난" 것도 아니고 앞으로 "예상"이 된다며 사람을 내보내려 한다니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이상하였다. CEO 아저씨는 다시 한번 이번 기회에 나갈 사람이 있다면 여러 가지로 좋은 조건이 될 것이다라고 하고는 노조원들끼리 이야기를 더 해보라며 자리를 비켰다.

 

노조에서 나온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초반에 한 이야기들이 전혀 기억이 안나는 것을 보니 당시에는 아직도 남의 이야기인가 싶어서 그냥 딴생각을 했나 보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야기 방향이 이상한 곳으로 틀어지게 되었다. 즉, 만약 나간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결국 회사에서 해고를 해야 한다면 Seniority 가 낮은 순, 즉 밑에서부터 내보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때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이 회사에서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허허 사람들 말을 참 이상하게 하네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설명회가 끝나자 나는 정말 무척이나 찜찜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혹시 내가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럴 것이었으면 수습 기간 때 잘랐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업무를 보았다.

 

그 이후로도 사람들끼리 가끔 그때의 설명회 이야기를 하면서 누구 나간다는 사람이 없었나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특별히 심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아 보였다. 다들 그저 누군가는 나가겠지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어쨌든 밑에서부터 나갈 테니 나는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했을까....

 

아무튼 나도 다른 사람들도 그것이 나만 아니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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