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2일 작성
드디어 이 날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목차에 맞추어 제목을 정하다 보니 Layoff - Layoff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16년 6월 8일 수요일.
그날도 여느 날처럼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려고 했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나 이 회사에 있던 커피의 맛이 괜찮아서 먹기 시작했다. 아마 그날도 회사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Inspector들은 주중에는 자기 지역들로 검사를 가서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으니 아마도 인스펙터가 모여있는 사무실 쪽에는 사람이 한 두 명정도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Chief Inspector 아저씨가 잠깐 자기 방에서 보자고 하였다. 앞의 글들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당시에 내가 하고 있던 일들이 참으로 다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연히 업무 이야기를 하려는 줄 알고 방으로 갔다.
아저씨의 방에 들어 가보니 아무도 없어서 혼자 앉아있었는데 곧 이어서 Chief Inspector가 들어오고 뒤이어 HR Manager가 들어왔다 (참고로 이 회사는 조그마한 회사라 HR 담당자는 HR Manger 한 명뿐). 사실 그전까지는 해고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둘이 함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이것은 그것이다라고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사정이 이러하고 저러하여 미안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를 해고하게 되었다면서 서류를 하나 건네주었다. 서류에는 'Notice of Lay-off'라고 적혀있었다.
Chief Inspector 와 HR Manager의 말로는 예전에 설명했듯이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아 인스펙터를 줄여야 하는데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가장 늦게 들어온 순서대로 리자이나에서 한 명 그리고 사스카툰에서 한 명을 해고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나는 노조에 속해 있기 때문에 바로 해고되는 것은 아니고 단체협약에 따라 60일 후에 해고가 될 예정이며 그 날이 오면 다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야 된다고 했다.
1. Bumping Option 을 사용한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을 밀어내기)
2. Layoff 된다
3. 퇴직 (Retirement) 을 한다
4. 사직 (Resign)을 하고 Severance를 받는다
5. 무급 휴가를 가고 최종적으로 사직, 퇴직, 또는 Layoff 중에서 선택한다
이것 참 난감하였다.
말하는 뉘앙스로는 나를 내보내기는 싫으나 일단 Layoff Notice를 줄 테니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퇴직할 때가 무르익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는 것 같았다.
아무튼 여러모로 난감하였다. 오늘은 일을 안해도 좋으니 집에 먼저 들어가서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방을 나온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싫고 이야기하기도 싫어 그냥 자리에 가서 컴퓨터를 끄고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 비보를 와이프에 전했다. 와이프도 무척이나 난감했을 것이다.
그 종이를 받고 나서 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누워있으면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이사왔는데...
앞으로는 무엇을 먹고사나...
하필이면 참으로 운이 없게도 바로 해고 통지를 받기 4개월 전에 이제는 오랫동안 한 곳에서 살고자 엄청난 모기지를 받아 집까지 샀었다. 하지만 잠도 안 오고 분노가 넘치는 상황에서도 내가 주어진 상황을 잘 판단해야 했다. 이 종이를 받고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아니 선택해야 하는 옵션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1. Bumping Option: 내가 이것을 선택하면 같은 회사 내에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을 밀어내고 나는 살아남는 것이다. 만약 같은 회사 내에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없으면 같은 노조(SGEU)에 속해 있는 사람 중에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을 밀어내고 내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선 같은 인스펙터 중에서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그리고 같은 노조 안에서 우리와 같은 일은 하는 사람들은 없으니 설사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있어 그를 밀어낸다고 하더라도 겨우 자리만 보전하는 것이지 하는 일과 임금은 완전 달라지는 것이라 고려할 만한 옵션이 아니었다.
2. 해고: 해고를 당하고 향후 다시 회사에서 채용 계획이 있을 경우 우선적으로 채용된다.
3/4. 퇴직이나 사직: 이것은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들에게나 할 만한 이야기이지 앞 길이 창창한 나로서는 이것을 선택하나 Layoff를 선택하나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이 종이를 받고 나서야 퇴직, 사직, 해고 등이 조금씩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5. 무급휴가: 무급휴가를 가더라도 결국은 돌아와서 위의 2/3/4번 중에서 다시 선택해야 하니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결국 결론은 그냥 해고든 퇴직이든 사직이든 회사를 떠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로 했던 일은 단체협약, 즉 SGEU 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을 정독한 것이다. 마침 뒷자리의 아저씨 자리에 이 협약 책자가 있길래 빌려다가 열심히 읽어 보았다. 뒷자리의 아저씨는 물론 어서 빌려가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이 책자를 통해 노조가 나를 어떻게 지켜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아무리 Permanent Full-time Position이라고 하여도 회사에서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그 자리 자체를 없애면 그냥 잔말 말고 짐을 싸야 된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회사가 노조원의 그 자리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하고 이러한 시도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때, 즉 정말로 부득이한 경우에만 Layoff 를 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이 문구를 읽고 나서 나로서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회사 내에 함께 있는 비노조원인 엔지니어들 중에서는 해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회사가 어려우면 왜 노조원인 인스펙터들만 해고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나의 해고의 부당함을 따져볼 생각으로 Letter도 작성하였고 마침 알고 있는 변호사와도 이야기를 해보고자 언제 만날 지를 이야기해 보았다. 그때가 바로 해고 통지를 받은 그 주말이다. 처음 해고 통지를 받고 4~5 일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이것은 부당한 해고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 이러한 부질없는 생각이 단 한 번에 사라지고 '아! 내가 그나마 노조원이라서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럼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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