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2018년 1월 14일 작성

 

 

Layoff Notice를 받은 직후 며칠 동안은 어떻게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분명 나가기는 했을 텐데 갔다가 그냥 집에 빨리 들어왔는지 아니면 그냥 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조금씩 마무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말을 하기 싫어서 피해 다녔던 것 같긴 한데... 아무튼 확실한 것은 회사를 계속 나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통지를 받고 나서 5일 정도가 지났지만 여전히 나의 해고 절차의 부당함을 항의하기 위하여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그다음 주 월요일에 회사를 나갔더니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일 할 맛이 나지 않았으므로 평소보다 조금 늦게 회사에 도착을 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오늘 엔지니어 2명이 해고를 당해서 바로 아침에 짐을 싸고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이럴 수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것은 회사에 따지고 자시고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회사가 비노조원인 엔지니어 중에서는 해고를 하지 않고 노조원인 인스펙터만 2명 해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이유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바로 그 순간부터 그나마 내가 노조원이라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구나 싶었다. 만약 내가 비노조원이었다면 나도 해고 통지를 받자마자 바로 짐을 싸야 했을 것이다. 그나마 노조원이었던 덕분에 60일 동안 월급 받으면서 다른 곳을 알아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런데 해고당한 엔지니어 중의 한 명은 대만 출신의 젊은이었는데 나와 나이랑 비슷하고 캐나다에 온 시기도 비슷하여 그럭저럭 친해지고 있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그 날로 볼 수가 없게 되어 더 안타까웠다. 게다가 그 사람은 아직 영주권도 없었고 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집까지 샀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이때부터 내가 집중한 것은 노조의 단체 협약 (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을 다시 한번 정독하여 과연 내가 이 상황에서 무슨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나가게 된 거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받자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노조비도 많이 냈으니...

 

다시 한번 단체 협약을 읽어 보니 그 전에는 안 보였던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해고 통지를 받았을 때 내가 무슨 옵션들을 선택할 수 있는지만 보였는데 이제는 각 옵션별로 나에게 어떤 권리가 주어지는지에 대해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던 5가지의 옵션 중(남을 밀어내기/해고/퇴직/사직/무급휴가) 현실적으로 선택이 가능한 옵션은 다음의 두 가지였는데 그에 따라 내가 가질 수 있는 권리는 다음과 같다.

 

1. 해고(Layoff)를 당하고 향후 회사에서 채용을 하게 되면 최우선적으로 들어올 수 있다 (Reemployment Rights)

2. 사직 (Resign)을 하고 Severance (사직 수당)과Career Assistance Option을 받는다

 

단체 협약을 분석해 보기 전까지는 그냥 해고를 당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나의 경우에는 사직 (Resign)을 하고 이런저런 수당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보였다.

 

사실 리자이나라는 곳이 워낙 조그마한 동네이기 때문에 내가 하던 일로 재취업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재취업을 위해서는 결국 또다시 어디론가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럴 경우 해고 (Layoff) 시 주어지는 Reemployment Rights는 전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다시 오라고 하여도 무엇을 믿고 내가 또다시 이 리자이나 땅에 돌아오겠느냐 싶었다.

 

그래서 결국 사직(Resign)을 선택하고 사직 수당을 받는 것으로 결정을 하였다. 사실 사직을 선택할 경우 내가 회사를 나가기 바로 전날까지만 내 선택을 알려주면 되었다. 하지만 단체 협약에 따라 내가 Bumping Option 사용할 경우 5 working days 이내에 회사에 통보를 해야 하는 점을 이용하여 회사를 귀찮게 하기로 하였다.

 

나만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사직'을 선택할 경우 단체 협약에 따라 이러저러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 맞는지를 묻는 레터를 HR Manager에게 보냈다. 이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답을 들어야 내가 Bumping Option을 사용할지 말지 결정이 가능하다는 이유와 함께.

 

내가 이 레터를 HR Manager에게 내밀자 그 사람이 무척이나 당황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의도는 사실 이게 아니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회사가 나를 내보낼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위에서 안 나가고 있으니 그들을 압박하려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럴 것이었으면 나에게 해고 통지를 할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지 겨우 일주일도 안되어 이런 말을 하나 싶었다.

 

그 이후 몇 차례 HR Manager 및 Chief Inspector를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100% 안전하다라고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90%는 안전하니 해고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하였다. 그런 것을 볼 때 확실히 회사가 나를 내보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회사에서 해고 통지서를 취소하지 않는 다음에야 나중에 갑자기 '김검사 미안하네' 라고 말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사람은 내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확실하게 해고가 취소될 것이라는 확인을 받고자 하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도 사정이 있기 때문에 확답을 해주지는 못하였다.

 

결국 답답한 것은 해고 통지를 받은 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일 년 반 만에 다시 한번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동시에 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어도 여기에 계속 붙어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고 통지를 처음 받았을 때의 그 절망과 불안함은 약간 줄어들었다고 할까나.

 

이리하여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매일 취업 공고를 살피면서 이력서를 손보는 한 편, 회사일도 계속해서 하게되는약간은 애매모호한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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