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2018년 3월 25일 작성

 

 

'캐나다 정착기'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년이 지나도록 정착기를 마무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어서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끄려던 컴퓨터를 붙잡고 글을 하나 더 써보려고 한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구역에서 실제로 ASME AI로서 일을 하고 있는 유일한 검사이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듯 내가 담당하고 있는 구역에는 ASME Shop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ASME Job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킹스턴에서 서쪽으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곳에 대형 화력 발전소가 하나 건설되고 있다. 그 화력 발전소에는 총 900MW 용량의 HRSG (Heat Recovery Steam Generator) 2기가 들어가는데 이 보일러들이 ASME Stamp가 필요한 보일러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진행되는 Assembly Work에 대해서 ASME AI로서 검사해야 한다.

 

현장 작업 사진.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현장이었는데 많이 아쉽다. 

 

내가 이 검사를 '불행'이라고 말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무엇보다 지금 이 공사를 담당하는 업체가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그 어떤 회사들 중에서도 최악이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내가 이 현장을 맡게 된 것은 2016년 10월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미 현장에서 많은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그 어떤 Inspector들 중에서도 최악인 내 구역의 전임 Inspector는 그때까지 도대체 검사를 해 놓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는 내가 입사한 이후에는 자기는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Supervisor에게 말하고는 그냥 빠져버렸다.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이곳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그때 당시 나는 아직 ASME AI도 아니었다.

 

이와 더불어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업체의 매니저들은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도대체 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캐나다의 법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변명만 하고 전혀 바꿀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정말 회사가 엉망이라 그 회사의 QC Inspector들은 끊임없이 떠나가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후회되는 것은 내가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름 대로의 변명은, 이러한 큰 프로젝트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기본적인 사항들을 잘 확인해 놓아야 하고 검사 방향을 잘 설정해 놓아야 하는데 전임자가 전혀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 그놈은 정말 미친놈이다. 지금 다시 생각만 해도 짜증이 차 오른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예전에 합의가 다 되었다고 하면서 배를 째라는 식이었다. 심지어 내 전임자도 자기가 그랬다고 하니 어느 순간 나도 그냥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 이러한 일에 대한 나의 경험이 부족했는데 뭐, 당시에는 AI도 아니었으니 경험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TSASK에 있을 때 이란 아저씨를 따라다니면서 이와 유사하게 현장 Assembly Work을 검사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 보고 배운 것들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결국 이 회사는 어느 순간 일을 너무 못해서 Owner로부터 보일러 작업을 제외한 모든 계약을 파기당했다. 그 덕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Inspector가 해고를 당했고 오직 2명 정도가 남았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 얼마 전 정말 어렵게 수압 테스트를 마쳤다. 그래도 최종 Data Report 사인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리해야 할 서류 작업들이 꽤나 많은데 그나마 몇 명 남아있던 Inspector와 Coordinator들도 다들 해고되거나 그만 둘 예정이라 아주 골치가 아프다.

 

내가 다음에 이러한 일을 한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큰 규모의 화력 발전소가 내 구역에, 아니 온타리오 내에 다시 들어설까 싶다. 이러한 것을 보면 TSSA같은 Jurisdiction만 ASME AIA(Authorized Inspection Agency)가 될 수 있는 캐나다의 법은 약간 불합리한 것 같다. 이 일을 통해 내가 TSSA의 Inspector들이나 Supervisor로부터 받은 인상은 몇 십 년 만에 한 번씩 등장하는 이러한 Field Work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구나 하는 것이다. 워낙 흔하지 않은 일이니 모르는 사항이 나와도 어디다 물어볼 곳도 없고 Supervisor도 계속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우리 같은 Jurisdiction 보다는 보험회사 같은 일반 AIA들이 경험도 많고 훨씬 잘할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러 2019년 5월 현재 이 발전소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원래 2년 전쯤에 완공이 되어야 했지만 원래 공사를 맡았던 회사가 워낙 개판을 쳐서 많이 지연이 되었다. 결국 그 회사는 쫓겨나가고 캐나다의 다른 회사가 맡아서 나머지 공사를 진행했다. 이제는 정말 마무리 단계라 속이 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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