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블로그에 올릴 만한 글이 없을까 싶어서 예전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정말 기억에 남는 곳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곳은 바로 사스카추완 클레이뱅크(Claybank)라는 곳에 있는 벽돌 공장이다. 

 

 

 

 

2016년 6월. 당시는 매우 우울한 시절이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내가 노조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해고 60일 전에 통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짐을 싸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히 살 길을 모색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정작 회사에서는 실제로 나를 내보내려고 해고 통지를 한 것은 아니다고 계속 이야기를 하여서 (즉, 퇴직에 가까운 사람들을 나가게 하는 명분을 만들고 있다) 만약 다른 곳에 갈 수 없더라도 어쨌든 이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2016년 7월 1일. 해고 통지를 받은 이후 처음으로 주말을 이용하여 리자이나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클레이뱅크 벽돌 공장에 가보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당시 이곳을 소개한 지역 뉴스를 통해서였다. 20세기 초반에 지어져서 현재는 문을 닫았지만 여름에는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워낙에 20세기 초반 것들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참으로 가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결과적으로 당시에 다녀오길 참 잘했는데, 이제는 정말 평생 다시는 가볼 수 없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리자이나에서 남서쪽으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정말 특이하면서도 재미있는 곳이었다. 캐나다 데이(7월 1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2~3 가족 정도가 더 있었다. 입장료가 있는 곳이어서 입장료를 사러 가 보니 마침 가이드 투어가 진행될 참이었다. 지금의 우리 가족으로서는 가이드 투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당시 우리 가족은 단출한 3명이었기 때문에 가이드를 따라서 구경을 하였다.

 

이곳의 역사는 대략 이렇다. 토마스 윌리엄스라는 사람이 1886년 잃어버린 소도 찾고 사스카툰 베리도 딸 겸 돌아다니다가 이곳에서 벽돌의 원료가 되는 클레이(Clay)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클레이를 무스조(Moose Jaw)까지 수레에 실어서 내다 팔았는데 후에 철도가 부설되어 1914년 바로 이곳에 벽돌 공장이 만들어졌다. 주로 내화 벽돌(Refractory Brick)과 건축용 벽돌 (Face Brick)을 만들던 이곳은 1950년대까지는 번창하였으나 후에 수요의 감소(내화 벽돌은 주로 증기기관에 사용됨)와 다른 기술들의 발달로 쇠락하게 된다. 그래서 70년대 이후에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졌고 말년에는 간헐적으로만 생산을 하다가 1989년 최종적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공장의 보존 상태가 좋기 때문에 현재도 1년에 몇 번씩 실제로 벽돌을 만드는 행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 내가 지역 뉴스에서 본 것이 바로 이 행사였다. 

 

아래는 당시에 찍었던 사진들이다. 참으로 특이한 곳인데 리자이나나 그 주변에 사시는 분들은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Claybank Brick Plant 전경

 

벽돌 제작 이후 건조를 위한 로(爐)

 

판테온 신전처럼 천장에 구멍이 있었다.

 

벽돌을 만드는 기계들. 아직까지도 잘 돌아 갈만큼 상태가 괜찮았다

 

벽돌 저장 창고. 아직도 당시 만들었던 벽돌들이 조금 남아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한 퀘벡의 샤토 프론테낙(Chateau Frontenac)에도 여기서 생산된 벽돌(Face Brick)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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