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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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모든 배경 설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아폴로 미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아폴로 1호(처음에는 우주선 번호에 따라 AS-204로 불렸으나 향후 아폴로 1호로 명명)는 아폴로 프로그램의 첫 번째 유인 비행으로 계획되었다. 비행 멤버는 거즈 그리섬(Virgil "Gus" Grissom), 에드 화이트(Edward White), 로저 샤피(Roger Chaffee)로 구성되었다. 이중 커맨더(리더)인 거즈 그리섬은 머큐리와 제미나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를 다녀왔고, 에드 화이트는 제미나이 미션 중 미국인 최초로 우주 유영(Spacewalk)에 성공하였다. 로저 샤피는 다른 우주 비행사들과 마찬가지로 테스트 파일럿 출신으로 우주 비행은 처음이었다.

 

아폴로 1호 우주 비행사들. 왼쪽부터 그리섬, 화이트, 샤피

그런데 우주선 발사 일정 3주 전인 1967년 1월 27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당시 우주 비행사들은 실제로 새턴 IB 로켓 위에 위치한 커맨드 모듈 속에 들어가서 우주선 발사 카운트다운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연습을 진행하기도 전에 이런저런 문제가 계속 발생하였다. 첫째로 커맨드 모듈 내 산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고치는데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다음에는 통신 장비의 이상으로 제대로 된 연습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거의 5시간 동안이나 커맨드 모듈 속에 들어가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던 그리섬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How are we going to get to the moon if we can't talk between two building?'

'두 빌딩 사이에서도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달까지 갈 수 있겠나?'' 

 

그리고 약 1분 후 정말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만다. 무전을 통해서 갑자기 '불이다!', '조종실(Cockpit) 안에 불이 났다!', '다 타고 있어'라는 비명이 들며 교신이 끊기게 된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는 기본 자료로 사용하고 있는 팟캐스트 '13 Minutes to the moon' 에는 불이 났을 당시의 교신 내용은 들려주지 않는다. 방송용으로 적합하지 않겠구나 싶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가 위키피디아에서 그 교신 내용을 들을 수가 있었다. 교신이 끊기기 직전 누군가 지르는 비명이 정말 정말 끔찍했다. 당시 미션 컨트롤에서 실제로 교신 내용을 듣던 사람들이 꽤나 충격을 받았다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20대 중반이었음)

 

불에 탄 아폴로 1호 내부 모습

 

단순히 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러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게된 것은 아니고 복합적인 문제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다. 

 

첫째로 연습에 사용한 커맨드 모듈 자체가 큰 문제였다. 잘못된 디자인, 조악한 품질 관리, 부적절한 재질, 그리고 100% 산소로 이루어진 모듈 내부 환경 등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우선 우주 비행사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해치(Hatch)는 안에서 쉽게 열 수 없는, 모듈 내부로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따라서 화재가 발생하여 모듈 내부 압력이 증가하게 되면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해치를 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듈 내부의 수많은 전선들의 절연(Insulation) 상태도 일하는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 다 닳아버리고 말았다. 

 

이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에 아폴로 1호의 백업 멤버들(후에 아폴로 7호의 멤버들)이 지상에서 해치가 열린 상태에서 동일한 연습을 하였다. 그날 밤 백업 멤버의 커맨더였던 월리 쉬라(Walter "Wally" Schirra)는 직접 아폴로 1호 멤버들에게 모듈의 완성도가 너무 낮다며 산소 100%인 상황에서 훈련을 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까지 하였지만 이 사고를 막지는 못하였다.

 

후에 NASA에서 사고 조사 결과 정확히 어디에서 화재가 시작되었는지는 찾지 못했지만 분명 모듈 하부에 있는 어느 전선 하나에서 스파크가 발생하여 산소 100%인 환경에서 급속하게 불이 퍼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월터 커닝햄(Walter Cunningham, 아폴로 1호 백업 멤버)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우주 비행사들이 죽기 전에 유독 가스를 마셔서 정신을 잃은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고 할 정도로 끔찍한 사고였다(화재 발생 후 단 19초 만에 사망했다는 인터뷰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커맨드 모듈 자체에 문제가 있게 된 이유는 아폴로 프로그램 초반 NASA 및 모듈 제작사였던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의 설계 및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달 탐사선의 커맨드 모듈의 개발 및 제작 기간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2~3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이 아폴로 1호의 비행이 1967년 2월로 예정되어있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적어도 1964년에는 본격적으로 커맨드 모듈 개발이 시작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1964년 말 미 공군 소속으로 NASA에 시스템 엔지니어로 참여하게 된 조지 애비(George Abbey, 후에 존슨 스페이스 센터의 디렉터가 됨)가 커맨드 모듈 개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노스 아메리칸에 방문했을 때 개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NASA에서는 노스 아메리칸의 담당자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1964년 NASA의 대부분의 (뛰어난) 인력들이 모두 머큐리 프로젝트와 제미나이 프로젝트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아폴로 프로그램이 최고점에 다 달았을 당시 약 400,000명의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투입되었는데 1964년 말에는 기껏해야 300~400명 정도만 아폴로 프로그램에 투입된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NASA 내부의 분위기도 이 사고에 일조를 하였다. 1967년 당시 NASA는 머큐리 프로젝트와 제미나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상태로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실은 아폴로 1호도 발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다들 낙관적으로,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하여 무리하게 일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NASA 내부적으로는 달까지 가는데 우주 비행사들의 희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을 했지만 그 누구도 우주가 아닌 지상에서 우주 비행사들이 희생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아폴로 프로그램은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칼을 갈게 되었고, 커맨드 모듈도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하여 해치 디자인도 변경하였고 내부를 100% 산소로 채우지 않게 되었다. 

 

비록 이 사고 이후 계획되었던 유인 우주 비행은 모두 취소가 되었지만 그 사이 아폴로 4, 5, 6호의 무인 비행을 통해서 커맨드-서비스 모듈, 새턴 V 로켓, 루나 모듈 등을 테스트하게 되었고 1968년 10월, 아폴로 1호 사고 이후 약 21개월 만에, 그리고 아폴로 11호 발사 9개월 전에 처음으로 유인 우주 비행에 나서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폴로 7호이다. 

 

 

처음에는 아폴로 1호와 7호 이야기를 한 번에 쓰려고 했는데 분량이 길어져서 아폴로 7호는 다음으로 넘어가야겠다. 

 

한편 내가 쓰는 이야기의 기본이 되는 BBC의 팟캐스트 '13 Minutes to the Moon'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Ep.04 Fire to the Phoenix

 

BBC World Service - 13 Minutes to the Moon, Ep.04 Fire to the Phoenix

"You heard ‘fire’. Then you heard a scream." The Apollo 1 tragedy and what happened next

www.bbc.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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