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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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아폴로 프로그램 중에서 아폴로 11호 다음으로 중요한 미션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번에 이야기를 할 아폴로 8호를 꼽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폴로 8호는 '인간'이 최초로 지구 궤도(Orbit)를 벗어나 달 궤도(Orbit)까지 다녀온 미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폴로 8호는 아폴로 11호 발사되기 겨우 7개월 전인 1968년 12월 21일에 발사되었다. 그러고 보면 아폴로 프로그램의 첫 유인 비행이었던 아폴로 7호가 발사된 이후 겨우 9개월 만에 달 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전 미국이 여기에 매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속도가 아닌가 싶다.

 

아폴로 8호 멤버. 왼쪽부터 짐 러벨(James Lovell), 빌 앤더스(William Anders), 그리고 커맨더 프랭크 보만(Frank Borman).

 

 

아직 아폴로 7호가 발사되기도 전인 1968년 6월, NASA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1968년 4월 새턴 V 로켓의 시험 발사(아폴로 6호) 도중 큰 결함이 확인되었고, 1968년 6월 완성된 아폴로 8호의 루나 모듈에서도 온갖 문제점이 발견되어 1968년 12월로 예정된 아폴로 8호 일정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만약 예정대로 아폴로 8호 미션을 진행하지 못한다면 그 후로 예정된 미션들도 연기되어야 하기 때문에 케네디 대통령이 제시한 1969년 달 착륙 기한은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NASA의 처음 계획은 아폴로 8호를 통해서 지구 저궤도에서 루나 모듈을 테스트하는 것이었고, 그다음 아폴로 9호를 통해 좀 더 높은 중궤도(Medium Orbit)에서 루나 모듈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달 궤도에서 루나 모듈을 테스트하고 마지막으로 달에 착륙한다는 계획이었다. 따라서 아폴로 8호 발사가 몇 개월 늦어진다면 1969년까지 달에 착륙하려는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CIA에서는 소련이 곧 달 궤도에 사람을 보낼 수 있다고 파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NASA 입장에서는 큰 압박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소련에서는 1968년 9월에 사람을 달 궤도에 보내려고 했으나 그 이전 우주선들의 발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대신 동물을 태워 보낸 후 다시 지구까지 돌아왔다고 한다. 물론 동물들은 모두 죽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아폴로 프로그램의 매니저였던 조지 로우(George Low)는 루나 모듈이 없는 상태로 커맨드-서비스 모듈만 발사하여 달 궤도에 다녀오자는 계획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루나 모듈이 완성되는 데까지 시간을 벌 수 있고 2번의 추가 미션(루나 모듈의 지구 중궤도 테스트를 건너 뜀)만으로 달 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에 1969년 달 착륙 일정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NASA 내부에서도 이러한 생각이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아폴로 프로그램 당시 미션 컨트롤에 속해있던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로 아폴로 8호의 운전 경로를 계산했던 파피 노스컷(Frances 'Poppy' Northcutt)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에 '아폴로 8호를 해가(1968년) 지나기 전에 보낸다고 하네요'라는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내가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I remember hearing rumors that 'Oh! they're gonna fly 8 before the end of the year'.

And when I heard those rumors, I would think, 'Oh! that's absurd. There's no way that's happening'.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NASA의 시니어 매니저들 모두 이것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최종적으로 (아폴로 7호만 성공한다면) 아폴로 8호는 달 궤도에 다녀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아폴로 7호 미션은 1968년 10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에 NASA에서는 1968년 12월 21일 아폴로 8호를 발사하게 된다. 물론 이 미션이 가능한 미션이라고는 하여도 그전까지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한 미션이었다. 아폴로 8호 멤버의 한 명인 빌 앤더스는 이 미션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1/3의 확률로 미션이 성공할 것 같고

1/3의 확률로 미션은 실패하지만 돌아올 수는 있을 것 같고

1/3의 확률로 못 돌아올 것 같다.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이렇게 위험한 미션에 참가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 올 확률이 저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 집에서도 이해를 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폴로 8호 발사 하루 전 영국 BBC에서 인터뷰를 한 내용을 요약해서 옮겨보면 이렇다.

 

BBC: 우주 비행사들이 달 궤도에서 지구로 영영 못 돌아오는 일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자살을 위한 약(Death Pill)을 준비하였나요?

NASA: 아니요. 만약 못 돌아오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산소가 부족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런 약을 준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약을 먹는 것과 같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폴로 8호의 발사 장면

 

 

아폴로 8호는 발사부터 모든 것이 처음의 연속이었다. 새턴 V 로켓의 첫 유인 비행이었고, 최초로 지구 궤도를 벗어났으며, 최초로 달 궤도에 진입하였고, 최초로 달 뒷면을 사람의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커맨더였던 프랭크 보만은 아마도 최초로 우주 멀미를 경험한 사람이다.

 

아폴로 8호는 지구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24,200 mph (약 39,000 km/hr)로 가속하여 약 400,000 km가 떨어진 달을 향해 날아갔다(이를 Trans Lunar Injection (TLI)이라고 함). 달까지 도달하는 데는 3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우주선의 속도는 최고점에 도달한 이후 지구 중력에 의하여 점점 속도가 느려짐) 이때 프랭크 보만은 어지럼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제미나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약 2주 정도나 우주에 머무른 경험이 있었음에도 멀미를 느낀 것을 보면 오히려 어느 정도 움직일 공간이 있었던 아폴로의 커맨드 모듈이 문제였나 보다. 당시 함께 비행을 했던 짐 러벨이 인터뷰에서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토를 하고 설사를 하고...

그런 것들이 우주선 여기저기에 날아다녔어요.

그게 무중력 상태의 안 좋은 점 중의 하나지요.

 

아무튼 아폴로 8호가 달에 가까워졌을 때 달 궤도에 진입하는 Lunar Orbit Insertion (LOI)를 실시하여야 했다. 이는 우주선의 속도를 줄여 달의 중력의 영향으로 달 궤도에 안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때 우주선의 속도를 너무 줄인다면 우주선이 달 표면에 충돌할 수 있었고,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못한다면 달을 지나쳐 계속 우주 속을 항해해 나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아주 중요한 순간인데, 한 가지 더 문제는 이 LOI는 달의 뒷면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아폴로 8호와 휴스턴에 있는 미션 컨트롤과는 교신이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 잘 진행된다면 미션 컨트롤에서 예상된 시간에 딱 맞추어 교신이 다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더 빨리 교신이 이루어져도 문제이고 더 늦게 이루어져도 문제였다. 아폴로 8호는 약 4분 7초 동안 로켓을 점화하여 속도를 줄였는데 멤버들은 그 4분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4분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편 미션 컨트롤에 있던 사람들도 그 4분이 영원같이 느껴졌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국 예정된 시간에 교신이 이루어졌고 하나의 문제도 없이 완벽하게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하였다. 

 

아폴로 8호가 찍은 달 뒷면 사진. 아폴로 8호 멤버는 역사상 최초로 맨눈으로 달의 뒷면을 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3번째 달 궤도를 돌고 있을 당시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지구였다. 너무나도 조그마한 지구였다. 짐 러벨은 당시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구를 내 엄지 손가락으로 가릴 수 있었어요

50억이 넘는 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내 엄지 손가락으로 가릴 수 있었어요

지구가 너무 작아 보였어요. 겨우 태양계에 있는 9개의 행성 중 하나일 뿐이었지요....

이것을 보고 있으면 당신의 위치 그리고 모든 우주에 대해서 생각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아무런 색깔이 없는 공간에서 오직 유일하게 지구만이 아름다운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들이 달까지 가서 발견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지구의 아름다움이었다.

 

아폴로 8호가 찍은 지구 사진. 어스라이즈(Earthris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진으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사진 중 하나로 기억되는 사진이다.

 

아폴로 8호가 발사되었던 1968년은 미국에 많은 사건이 있었던 해였다. 베트남 전쟁이 점점 격화되고 있었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했으며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도 암살당했다. 그렇게 우울한 1968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폴로 8호는 달 궤도를 돌며 지구로 메시지를 보낸다. 이 메시지는 다름이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이...'로 시작되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10절까지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아폴로 8호는 아폴로 프로그램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 아폴로 11호 성공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다음의 에피소드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Ep.06 Saving 1968

 

BBC World Service - 13 Minutes to the Moon, Ep.06 Saving 1968

War, riots, assassinations: “the year that shattered America”. But it ended with Apollo 8

www.bbc.co.uk

 

그리고 아폴로 8호의 커맨더였던 프랭크 보만의 이야기는 다음의 팟캐스트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This American Life Ep.655

 

So Over The Moon - This American Life

Producer David Kestenbaum tells the story of an astronaut who returns with a very unexpected view of the great beyond.

www.thisamerican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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