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올해 초 우연히 인덱스 펀드의 세계에 빠져 든 이후 이런저런 책도 읽고, 잡지도 보고, 팟캐스트도 듣고, 실제로 돈도 투자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하다 보니 더 이상 책도 읽기 싫어졌고, 잡지도 보기 싫어졌고, 팟캐스트도 듣기 지루해졌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책과 잡지와 팟캐스트에서 하는 말이 결국 똑같거나, 즉,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결론은 언제나 수수료가 저렴한 인덱스 펀드를 사서 오래 오래 보유해야 한다는 것, 아니면 거지같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거지같은 소리의 예를 들어 보자면 캐나다에서 출간된 어느 모기지 관련 책에서 모기지를 빨리 갚기 위해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장 볼 때는 여기저기 가격을 비교해 보고, 케이블 TV 말고 안테나로 TV를 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돈을 아끼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딴 말을 써서 책을 내겠다는 생각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아무튼 뭐 사실 인덱스 펀드에 투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그냥 계속해서 그것을 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더 알아야 할 것이 없긴 하다. 들리는 이야기가 많을수록 정신만 없을 뿐이니 경제 상황에 완전히 관심을 끊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관심을 끊기는 어려우니 그냥 뉴스 정보만 꾸준히 보면 어떨까 싶다.

 

 

이러한 경제생활 권태기에서 읽게 된 책이 바로 버튼 말키엘 (Burton Malkiel)이라는 사람이 쓴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이다. 이 책의 지명도로만 본다면 더욱 일찍 읽었어야 했지만 놀랍게도 동네 도서관에 이렇게 유명하고 많이 팔린 책이 없었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도서관에 책 구입 요청을 해봤는데 얼마 후 구입 승인이 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그래도 실제로 도서관에서 책을 사고 배달받고 내가 대출을 할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을 빌렸을 때는 이미 꽤나 권태기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2019년 판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아무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니 그 두께가 어마어마했다. 약 400 페이지의 분량이었는데 과연 3주 안에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내용이 꽤나 흥미진진하여 생각보다 읽을만하였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73년이고 지난 45년 동안 계속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 나오고 있는 2019년 판은 12번째 개정판으로 작가가 1932년에 태어났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얼마나 더 많은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간단하게 (지극히 주관적으로) 책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주식의 차트를 분석한다는 기술 분석(Technical Analysis)이나 회사의 가치를 분석한다는 가치투자(Fundamental Analysis)나 다 믿을 것이 못된다. 차트를 분석하는 경우에는 이미 차트가 움직인 다음에야 움직일 수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물론 다른 문제들도 많지만), 가치투자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정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과거 로또 당첨 번호들의 통계를 이용하여 매주 무슨 번호가 나올지 예상을 해 보았다. 엑셀로 표를 만들어서 어느 3개 수의 조합이 가장 많이 나왔는지를 찾아낸 후 최근에 무슨 번호가 자주 나오는지를 고려하여 그 주의 번호 3개를 뽑았다. 그리고 나머지 번호는 자동으로 로또를 샀다. 반쯤은 심심하니 재미 삼아했고, 반쯤은 아주 진지하게 임했다(물론 옆에서 지켜봤던 와이프는 내가 100% 진심으로 번호를 골랐다고 한다). 

 

어느 날 회사에서 로또 이야기가 나왔었는지 한 아저씨가 나에게 어차피 어느 번호가 나올 확률은 모두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번호를 예측할 수 있냐고 물었다. 번호 뽑기에 무척이나 몰두해 있던 나는 '물론 모든 번호가 나올 확률을 같지만, 예를 들어 당첨 번호가 '1, 2, 3, 4, 5, 6'과 같이 나오지는 않지 않겠느냐. 그래서 그렇게 나올 수 없는 번호들을 제외하여 최대한 확률이 높은 번호를 고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아저씨는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들어도 헛소리가 분명하다. 당첨 번호로 1, 2, 3, 4, 5, 6이 나오는 것이 더 말이 안 될지, 878회 당첨 번호로 2, 6, 11, 16, 25, 31가 나오는 것이 더 말이 안 될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마치 주식 차트를 분석한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재미있는 예가 나오는데,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상승, 뒷면이 나오면 하강하는 식으로 차트를 만들었다. 그것을 본 차트 분석가는 도대체 무슨 주식이냐며 이런 것은 당장 매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치투자의 경우에는 아무리 분석을 잘한다고 하여도 어느 날 CEO가 문제를 일으킨다거나(YG나 삼성을 생각해 보자), 큰 사고가 난다거나(보잉 737 Max 같이), 버블이 꺼지거나 갑자기 불황이 시작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주가가 움직일 수 있다. 일반인보다 훨씬 정보가 많은 기관 투자자들도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나 2008년 공황을 피해 가지 못한 것을 보면 일반인이 기업의 가치를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결국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와 알 수 없는 차트 분석에 나의 소중한 돈을 맡기는 것보다 그저 잘 분산된 인덱스 펀드들에 투자를 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이 책 또한 앞서 읽은 책들과 동일한 결론이었지만 참으로 강력한 한방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재미있는 책을 읽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 이 책을 끝으로 더 이상 투자 관련된 책들은 읽지 않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는 이 책이 '시장 변화를 이기는 투자'라는 제목으로 지난 2009년에 출간되었다. 번역본의 경우 언제 발간된 원본을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009년 이후에 3번 정도의 개정판이 나온 것으로 보이니 이 기회에 영어 공부도 할 겸 최신판을 원서로 구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교보문고(친구가 여기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으니 다른 곳 말고 여기만 찾아보았다)에서 30,8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캐나다에서 사보려고 해도 세금 포함하여 35~40불은 주어야 하니 괜찮은 가격인 것 같다.

 

환회야 너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니네 사이트에서 이 책을 사서 읽어보렴. 더 늙기 전에 돈 모아야지.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Revised, Updated)

In a time of increasing inequa...

www.kyobobook.co.kr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