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정식 명칭은 'Boiler and Pressure Vessel Inspector'이기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직업을 물으면 당연히 'I am a Boiler and Pressure Vessel Inspector'라고 말한다. 이럴 경우 대개 그것이 무엇이냐는 반응이 많은데 그러면 다시 한번 '보일러'와 '압력 용기, 배관'등을 검사합니다라고 말을 하고는 했다.

 

이쪽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야 정확히 'Pressure Vessel'이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말을 하게 된다면 캐나다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이 사람은 뭔가 보일러와 관련된 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보통은 이쯤에서 나의 직업에 관련된 이야기는 끝이 나고 다른 주제로 말이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가끔씩 이에 대해서 더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종류의 보일러를 검사하나요?'

'캐나다에서는 집에 난방을 어떻게 하나요?'

'보일러를 잘 고치시겠네요'

 

등등 주로 우리가 집에서 볼 수 있는 보일러(여기서는 Water Heater라고 부름)를 생각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말이 같은 보일러이지 집에서 쓰는 Water Heater와 산업용 보일러는 거의 경차와 탱크 수준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 차이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고 결국 상대가 잘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그렇지요'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직업을 물으면 '저는 Boiler and Pressure Vessel Inspector인데 이런저런 보일러랑 압력용기 그리고 원자력 발전에 관련된 검사를 합니다'라고 말을 하는 편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관심이 '원자력' 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보일러나 난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Nuclear라니!

이 얼마나 거창한 말인가!

 

실제로 요즘에는 내가 하는 일의 20~30% 정도는 원자력 발전소 설비에 관련된 검사를 하는 것이다. 캐나다에는 현재 총 19기의 원자력 Reactor가 있는데 그중의 1기를 제외하고 18기의 Reactor가 모두 내가 있는 온타리오주에 위치하고 있다. 마침 그중 많은 수의 Reactor가 최근 몇 년 동안 Refurbish(말 그대로 리퍼비시,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대규모 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설비 검사가 매우 많아졌다. 그리고 워낙 장기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향후 10년 정도는 계속해서 일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정유소에서 일을 했었기 때문에 내가 이쪽의 일을 하게 될지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 원자력 발전소 설비들의 검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캐나다에서 어느새 3년 정도 원자력 설비들을 검사하다 보니 이것은 정말 엄청난 일인 것 같다. 정말이지 이 세계는 'As clear as mud', 즉 진흙탕처럼 투명한 세계인 것이다.

 

특히나 캐나다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모든 압력 설비들의 설계를 관련 기관(온타리오의 경우 TSSA)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설계가 등록된 이후 약간 변경이 생기면 이것을 다시 등록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부터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도면이 수정되면 이것 또한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허용 요차를 넘어가면 이것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모두 생각이 다르다. 

 

더 복잡해지는 것은 이것이 하나의 완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제품' 혹은 '부품'을 만드는 경우라면 이것을 'Material'로 생각을 해야 하는지 'Part'로 생각을 해야 하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것을 하나의 'Component'로 봐야 하는지... 여기서도 모두의 생각이 다르다.

 

특히나 캐나다에서는 모든 설계를 관련 기관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해석들이 다르고, 설계 관련 코드인 ASME BPV Section III 상위에 CSA N285라는, 정말 불투명하기 그지없는 코드가 있기 때문에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입사 초반 내 슈퍼바이저가 나에게 'Nobody fully knows this'라고 했던 것을 보면, 그에게도 이곳은 불투명하기 그지없는 곳인가 보다. 

 

그래도 경력자들을 찾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먹고 살기에는 괜찮은 분야인 것 같다. 실제로 발전소나 엔지니어링 회사에 한국 사람들이 곧잘 보이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 원자력 분야에서 일을 한 경력자라면 이곳에서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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