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앞서 글들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참고: 스케이트, 킹스턴: TSSA - 하는 일 - Refrigeration Piping Inspection) 내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에는 아이스링크들이 참 많이 있기 때문에 아이스링크에 검사를 나가는 일들이 많다. 사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냉동(Refrigeration) 관련 설비를 검사를 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아이스링크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래도 매년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보게 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대충 어떻게 아이스링크가 돌아가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리는 간단하다. 

 

설비 한쪽으로는 냉매가 흐르며 다른 한쪽으로는 글라이콜(Glycol, 부동액) 또는 염수(Brine)가 흐른다. 이때 Chiller에서 냉매가 글라이콜을 만나면서 글라이콜의 열을 뺐고 0°C 이하로 냉각된 글라이콜은 아이스링크 바닥을 흐르며 그 위에 있는 물을 얼린다. 물을 얼리는 과정에서 온도가 올라간 글라이콜은 다시 Chiller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Chiller에서 에너지를 받아 기화된 냉매는 Condenser에서 액화되며 다시 Chiller로 돌아가게 된다.

 

 

 

캐나다 이외의 지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캐나다에서는 냉매로 암모니아(NH₃)를 무척이나 많이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모니아라고 한다면 그저 냄새가 안 좋은 기체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초반에는 왜 냉동 설비에 암모니아가 사용되는지 알지도 몰랐고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몰랐다. 가끔씩 일을 하다가 암모니아 냄새가 심할 경우에는 조금 따가운 느낌을 받는 정도였다.

(*) 냉매로 암모니아를 사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경제적인 이유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다가 지난 2017년 10월, 캐나다 BC주의 한 작은 시골 마을 아이스링크에서 암모니아가 유출되어 3명의 작업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로 희생된 사람 중의 한 명이 일했던 회사는 내가 냉동 설비를 검사할 때 항상 만나는 바로 그 회사였다.

 

Fernie Memorial Arena Incident Animation

 

 

사실 이 사고 자체는 내가 일하는 도중 발생할 만한 사고는 아니다. 그래도 이 사고가 발생한 이후 암모니아 냉동 설비에 검사 갈 일이 있으면 은근히 무섭다. 암모니아 냄새도 신경 쓰이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다. 그래도 보통은 주변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서 검사할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불안해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얼마 전 동네에 있는 컬링장에 검사를 가게 되었다. 이곳은 다른 아이스링크에 비해서 규모가 조그마한 편이었고, 평소와는 다른 종류의 검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운전 중인 설비실에서 아무도 없이 나 혼자 검사를 해야 했다. 설비실에 문을 닫고 들어가 있으니 어둑어둑하고 암모니아 냄새도 나는 것이, 이것이 원래 평소에도 이렇게 냄새가 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특별히 많이 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내가 이쪽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큰 일이겠다 싶었다. 머릿속으로 아무도 없는 설비실에 혼자 쓰러진 상태의 내가 발견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서 쓰러지면 소리라도 지를 수 있게 문을 열어 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을 받쳐놓을 만한 것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창고에 살펴보니 쓰지 않는 컬링 스톤들이 보였다. 그중에 하나를 꺼내 문이 안 닫히도록 받쳐놓고 검사를 하였다. 재빨리 검사 후 서류 작업은 밖에서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설비실 안에서 혼자 공포와 싸우고 있는 사이 밖에서는 사람들이 컬링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들 나이가 많은 분들이셨는데 한가롭게 컬링을 즐기고 계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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