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 전 이맘때쯤, 미국은 물론이겠고 캐나다 전국 뉴스에서도 등장한 사람이 바로 래리 나사르 (Larry Nassar)라는 사람이었다. 미국 체조 국가 대표팀 담당 의사였고 미시건 주립 대학 (Michigan State University)의 의사였던 그는 지난 20여 년간 의료 행위 도중 약 250여 명의 소녀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되어 최대 125년 형을 선고받았다(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조금 복잡하니 그냥 절대 죽을 때까지 못 나온다고 이야기해야겠다).
당시 뉴스를 보았을 때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안 걸릴 수 있었을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 이 블로그에서도 이야기를 한 말콤 글래드웰 - Talking to Strangers에서 이 사람의 사례가 등장하였다. 이 책에서는 래리 나사르를 'Truth-Default(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진실되다고 가정)'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즉, 이 사람이 평소에 워낙 겸손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몇몇 피해자들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음에도 잡히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진료실에 함께 있었던 부모들은 본인들의 딸이 바로 자신의 눈 앞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가 이런 짓을 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 피해자의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본인이 의사였다.
어느 날 래리 나사르가 자신의 딸을 진료를 하는데 갑자기 그가 발기가 되는 것을 보았다.
당시 그녀는 '저건 이상한데. 정말 이상하네. 불상한 사람(That's weird. That's really weird, poor guy)'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책에서는 이 인터뷰의 소스가 NPR의 'Believed'라는 팟캐스트라고 하였다. 한 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총 9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팟캐스트는 래리 나사르가 지난 20여 년 동안 어떻게 소녀와 여성들을 추행했고, 어떻게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잡히지 않을 수 있었고, 결국 어떻게 잡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꽤나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 래리 나사르는 '좋은 사람'이라고 각인되어 있었고, 경찰서에 불려 갔을 때에도 온갖 의료 절차와 전문 용어를 동원하여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잡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한 피해자의 집념 때문이었다. 이 피해자는 15살 때 처음 래리 나사르에게 진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 약 1년여간 계속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받을 때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지만, 이렇게 유명한 의사가, 자신의 엄마도 진료실에 함께 있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애써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진료를 받지 않기로 마음먹고 엄마에게 그동안 자신에게 발생한 일을 말했다.
하지만 본인조차 이것이 일반적인 의료행위인지 아니면 이상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경찰에 보고를 한다고 하여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일이 발생한 이후 16년 동안 증거를 모았다. 본인의 의료 차트를 확보하였고, 다른 전문의들에게 일반적인 치료 방법도 문의하는 식으로 증거를 모으며 때를 기다렸다.
한편 지난 2016년 여름, 미국 인디애나의 한 언론사에서 미국 체조 협회 코치들의 성추행 혐의를 크게 보도하였다. 그때까지 때를 기다리던 이 피해자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느끼고 이를 보도한 신문사에 자신의 이야기를 제보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피해자들도 같은 신문사에 제보를 하였다. 그 신문사의 기자는 직감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드디어 래리 나사르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사가 나왔지만 처음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나중에 자신이 피해자임을 깨닫게 되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를 감싸주었다. 그러다가 모든 사람들이 래리 나사르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압수당한 래리 나사르의 하드 드라이브에서 37,000 장의 아동 성학대 사진이 발견된 것이다(사진은 자신이 진료를 했던 환자들).
결국 래리 나사르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재판을 빨리 끝내는 방향을 선택한다. 재판을 오래 끌어보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더욱 큰 고통만 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래리 나사르가 검찰과 한 Plea Agreement(유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형을 협의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가 바로 재판 말미에 피해자가 직접 자신가 당한 피해를 이야기하는 Victim Impact Statement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 피해자 진술의 첫 번째 주자는 유일하게 비의료 행위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였다(이 피해자의 이야기가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소개되는데 참 안타깝다. 부모들조차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다). 이 사람의 진술이 매우 강력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진술을 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결국 총 200여 명이 넘는 피해자가 법정에 서서 자신이 받은 피해를 진술하게 된다.
무수히 많은 피해자 진술의 마지막은 바로 처음으로 언론에 래리 나사르를 제보한 피해자였다. 이 사람의 마지막 진술 또한 강력하다(직업이 변호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말을 잘한다). 아래는 그중 마지막 부분이다.
This is what it looks like when someone chooses to put their selfish desires above the safety and love for those around them.
This is what it looks like when the adults in authority do not respond properly to disclosures of sexual assault.
This is what it looks like when institutions create a culture where a predator can flourish, unafraid and unabated.
And this is what it looks like when people in authority refuse to listen, put friendships in front of the truth, fail to create or enforce proper policy and fail to hold enablers accountable.
This is what it looks like. It looks like a courtroom full of survivors who carry deep wounds, women and girls who have banded together to fight for themselves because no one else would do it.
20-30분 분량의 에피소드 9편으로 이루어진 이 팟캐스트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큰 이슈가 된 사건을 다루고 있어 시간 날 때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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