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한동안 골든스테이트킬러 이야기를 쓰느라 어두운 이야기만 잔뜩 읽고, 들었기 때문에 한동안 True Crime 장르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듣고 있던 팟캐스트들의 시즌이 끝나서 무엇을 들을까 하다가 예전에 저장해 놓았던 팟캐스트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내가 예상했던 장르가 아닌 True Crime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해서 제목을 다시 보니 실수로 원래 선택하려고 했던 팟캐스트가 아니라 그 옆의 팟캐스트를 선택한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어두운 이야기들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에 그만 들으려고 했으나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와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듣게 된 팟캐스트가 'In the Dark'라는 팟캐스트였다.
언제 저장해 놓았는지도 모르는 팟캐스트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슨 사건에 관련된 이야기인지조차 당연히 알지 못했다. 아마도 최근 시즌 2가 릴리즈 되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리뷰나 광고를 듣고는 저장을 해 놓은 것 같다. 아무튼 이 팟캐스트의 시즌 1은 1989년 10월 미국 미네소타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11세 소년의 실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구가 3,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네소타의 세인트 조셉(St. Joseph, MN)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1989년 10월 22일 밤 9시경 제이콥 웨더링이라는 11세 소년이 길에서 총을 든 남자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납치 당시 제이콥은 친구 그리고 한 살 어린 자신의 동생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비디오를 빌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총을 들고 나타나 나이를 묻고는 제이콥을 납치한 것이었다.
제이콥의 친구와 동생은 너무 놀라 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렸고(범인은 이 둘은 보내주면서 뒤를 돌아보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곧 경찰에 신고를 하여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되었다. 비록 어린아이들이었지만 용의자를 본 사람이 2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 범인이 잡힐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른 시간에 용의자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경찰은 점점 수사망을 넓혔고 곧 미네소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이슈가 되었는지 온갖 뉴스나 TV쇼에도 소개가 되었고 제이콥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노래까지 만들어졌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90년대에 발생하였던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을 연상케 하는 규모로 미국 전국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 같다. 결국 개구리 소년들이 그랬듯 이 사건 또한 영구미제로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27년이 지난 2016년 아동 포르노 소지로 이미 구속된 상태였던 대니 하인리히(Danny Heinrich)라는 사람이 범행을 자백하면서 그동안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된다.
이 팟캐스트의 처음 한 두 에피소드를 듣고 있다 보면 어떻게 제이콥이 실종되었고, 어떻게 범인이 잡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팟캐스트이구나 싶다. 그런데 사실은 어떻게 범인을 붙잡았나 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범인을 놓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파헤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지금처럼 수사가 발달하지 못했던 80년대이니까 혹은 흉악 범죄를 많이 다루어 보지 못하는 시골 경찰이니까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미네소타의 스턴스 카운티(Stearns County, 제이콥이 실종되었던 세인트 조셉이 속한 카운티) 경찰 스스로도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으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우리가 했던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80년대라서 혹은 시골 경찰이라서 범인을 놓친 것이 아니었다. 실종 당시에도 주변에 수많은 단서가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 조그마한 카운티(우리나라의 '군' 정도에 해당)에서 해결하지 못한 강력 범죄들은 이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수년 전 4명의 일가족 중 3명의 일가족이 살해당한 일도 발생하였고, 70년대에는 자매가 실종된 후 사체가 발견되기도 하였지만 그 어느 것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심지어 2013년에는 경찰관이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것을 그의 동료가 목격했음에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차라리 잡지 못했으면 잡지 못했지 괜히 엄한 사람만 붙잡았다).
놀랍게도 살인, 방화, 납치, 강간 등 주요 강력 범죄에 대한 스턴스 카운티 경찰(Sheriff)의 기소율은 줄곧 10% 전후를 오갔다. 이때 기소율은 실제 범인을 잡아서 유죄 판결을 받아낸 것이 아니라 그저 용의자를 잡아서 기소를 한 수치임에도 이렇게 낮은 것이다. 즉, 10건의 강력 범죄 중 겨우 1~2명의 용의자를 붙잡아 기소를 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Sheriff나 Police나 모두 경찰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둘은 큰 차이가 있다. Police의 수장은 주로 임명이 되는데 반해서 Sheriff의 수장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Sheriff는 주로 County 단위로 존재하는데 미국은 사법 체계가 무척이나 복잡하여 Sheriff가 어떤 조직인지 잘 감이 와 닿지 않는다.
아무튼 더욱 놀라운 점은 미국의 사법 체계상 이러한 'Sheriff'는 그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Sheriff를 감찰하는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Sheriff의 수장이 일을 못한다고 잘리지도 않는다. 그저 선거를 통해 수장을 결정하게 된다. 현재와 같은 체계를 옹호하는 사람은 Sheriff가 감시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서 자신들의 경찰의 수장을 뽑으니 이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소율이 이렇게 낮더라도, 온갖 부패가 산적해 있더라도 선거만 계속 이긴다면 문제가 없는 이러한 경찰 체계는 한국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Serial이라는 팟캐스트의 시즌 3를 듣고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팟캐스트를 듣고는 내가 미국에서 형편없는 Sheriff 담당구역에 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www.apmreports.org/in-the-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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