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목표는 엔지니어(Professional Engineer, P.Eng) 등록을 하는 것이었다. 캐나다에서 P.Eng로 등록을 하려면 아무리 해외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기간이 길어도 캐나다 내 경력을 1년 이상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주 별로 기준이 약간 상이함). 따라서 내가 나중에 캐나다에서 P.Eng가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현지에서 1년간 엔지니어로 일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직조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울 수 있는 좋은 목표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의 목표나 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목표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보람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캐나다에서 취직을 하고, 엔지니어 협회에서 요구하는 세미나와 시험에 참석하여 결국 P.Eng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서 P.Eng 등록이 거의 끝나자마자 일하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3,000km가 넘는 거리를 이사해야 했다. 그 사이 둘째와 셋째 녀석들이 태어났고 정말 지난 6년 동안 참 정신없이 살았다. 그래서 첫 번째 목표 달성 이후 캐나다 생활의 두 번째 목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 계속해서 블로그에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나도 유튜브 스타가 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도 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연습 삼아 '안녕하세요 김검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나를 보며 와이프가 요즘 유튜버들은 그렇게 말을 안 한다고 해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하는 유튜브는커녕 블로그도 잘 안 읽어 보는데 어떻게 시류를 따라간단 말인가?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인기 블로거가 되기도 글렀다는 생각에 다른 목표가 필요했다. 사실 별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의 다음 목표는 이미 정해져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나의 다음 목표는 고침사!
캐나다 생활 초반, 그래도 혼자서 이것저것을 고치려고 애를 쓰는 나를 보며 와이프가 딸한테 '아빠는 고침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사전에는 없지만 누구나 뜻을 유추해 낼 수 있는 말이니 독특하면서도 훌륭한 단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 나는 고침사가 되는 거야.
많은 한국의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도 평생 내가 '사'자로 끝나는 번듯한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다(반면 아버지는 뭐가 되든 지가 알아서 먹고 살라고 하셨다). 결국 어머니가 원하시는 의사나 검사(檢事)가 되지는 못했지만 혼자서 김검사(원)(檢査)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어머니의 높은 기대를 만족시켜 드리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들이 검사에다가 고침사가 된다면 어머니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아무튼 궁극적인 고침사가 되기 위해서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싱(Sewing Machine)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바느질을 배운 적이 있었다(그러고 보면 무슨 과목에 바느질을 배웠을까?). 아직도 당시 선생님과 했던 대화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바느질을 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여태껏 미싱 기계를 살 수는 없었는데, 사보았자 바지 줄이는 일 말고는 쓸데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손이 섬세하지 못해서 미싱으로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들 능력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싱을 사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겨우 3년 정도밖에 쓰지 않은 트램펄린 매트에서 스프링을 거는 고리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트만 따로 살 수도 없어서 몇 년 안된 트램펄린을 버리고 새로운 트램펄린을 사기에는 너무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아이들과 트램펄린을 타며 곰곰이 고민해 본 결과 이것은 미싱만 있다면 내가 고칠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미싱의 종류가 다양하게도 있었는데 어차피 나는 기본적인 기능들만 필요할 테니 저렴한 기계들로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파는 곳이 많지는 않았지만 캐네디언 타이어에서 팔고 있는 Singer Tradition 2282가 세금 포함하여 $170 정도로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정말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해서 살까 말까 많은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목요일 갑자기 $20 세일을 하는 데다가 $15을 적립해 준다는 것을 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입을 하였다.
평생 살면서 당연히 미싱 기계는 써 본 적도 없었고 누가 쓰는 것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가 쓰시는 것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기계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용어들도 낯설었다. Thread(실), Footer(노루발, 왜 한국에서는 이것을 노루발이라고 할까?), Bobbin(밑실) 등등. 그리고 박음질의 종류는 왜 이리도 많고, Tension은 무엇이며 Width, Length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제조사에서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에 매뉴얼은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하길래 귀찮아서 우선 몇 가지 유튜브 동영상만 찾아서 따라 해 보았다. 그런데 동영상만 보고 따라 하려니 실을 끼우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특히나 Bobbin 녀석이 말썽을 일으켰다. 아무리 동영상을 따라 해 봐도 밑실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첫날은 대실패로 돌아갔다. 나름대로 무엇이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당연히 알리가 없었다. 와이프도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보았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어쨌든 둘째 날에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매뉴얼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아차 싶었던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Bobbin의 장력(Tension)을 확인하지 않았다. 매뉴얼을 보니 친절하게도 아래 그림의 동그란 부분을 돌려서 장력을 조절하라고 쓰여있었다. 이것의 장력이 너무 세서 밑실이 잘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또 다른 중요한 실수는 Footer도 내리지 않고 박음질을 하였다는 것이다(처음 생각에는 Footer를 내리면 직물을 밀 수 없으니 재봉질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무엇이든 매뉴얼을 읽어보고 시작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중요한 매뉴얼을 안 읽어 보고 시작했다니! 나의 불찰이었다.
결국 삼일째 되는 오늘 처음으로 재봉질에 성공하였다.
내가 드디어 재봉질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듣고 와이프는 나에게 줄이 끊어졌던 앞치마를 내밀었다. 그리고 고침사 남편은 여유 있게 고쳐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트램펄린을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에 Michaels에 가서 110/18 바늘과 두꺼운 실을 사 왔다. 김고침사는 이번에도 반드시 성공해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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