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나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무엇인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분명히 딸아이를 따라 극장에서 토이스토리4와 겨울왕국2를 본 것은 기억이 나지만 실제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신과 함께 1, 2편'을 본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그래서 최근 팟캐스트에서 '보랏(Borat)'의 새로운 영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뭔가 트럼프를 풍자하는 영화인 것 같은데,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가 논란이 되었다고도 했다. 다른 일은 하면서 들은 내용이라 그냥 루디 줄리아니 비슷한 사람이 나와서 풍자를 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마침 10월 12일 벌어진 프라임 데이(Prime Day) 때 한 달 동안 무료로 Amazon Prime에 가입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벌써 2주 전의 일인데 한동안 볼 생각도 않다가 최근 글 쓰기도 지겨워져서 어제서야 겨우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대략적인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이 영화는 14년 전에 큰 성공을 거둔 보랏의 후속 편으로 카자흐스탄의 기자인 보랏이 이번에는 카자흐스탄 총리의 명령에 따라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바치기 미국에 온다는 내용이다. 

 

보자마자 이것은 코미디 영화이구나 싶은 화면과 등장인물들이었다. 물론 '보랏'의 영화 장르(Mockumentary, 가짜 다큐멘터리)를 전혀 몰랐던 나는 당연히 사람들이 다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간에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나오는 장면을 보니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보수 계열 정치 행사인 CPAC 2020에서 마이크 펜스가 연설을 하였는데 영화의 주인공이 트럼프로 분장을 하고 그 행사에 난입을 한 것이다. 마이크 펜스가 주인공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는데 설마 이게 진짜로 있었던 일일까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멈추고 검색을 해보았다. 

 

CPAC 2020에 난입한 보랏의 주인공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마이크 펜스

 

검색을 해보니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장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영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엄청난 준비와 대담함이 필요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데 나중에 소송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얼핏 검색을 해보니 현재까지 한 건의 소송이 있었다).

 

 

 

 

역시 이 영화의 꽃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루디 줄리아니가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는 실제 인터뷰를 가장하여 보랏의 딸이 그를 호텔방으로 불러들였다. 루디 줄리아니는 인터뷰 후 침대에서 위의 사진과 같은 행동을 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참고로 그는 옷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집에 방문한 보랏

 

사실 내가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보랏이 트럼프 지지자들 집에 방문하는 장면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주인공은 5일 동안 그들의 집에 묶었는데 그동안 계속 영화 캐릭터로 지내야 해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들은 큐아난(QAnon(*))을 믿는 사람들로 주인공에게 힐러리 클리턴이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아이들을 잡아다가 성매매를 하고 그들의 피를 뽑아 자신에게 주입한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 민주당 인사들이 아동 성매매를 한다는 등의 참으로 이상한 음모론. 그들에 따르면 트럼프가 그들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자신들은 정작 보랏네 정부에서 만들었다는 책을 보며(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여성들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음모론이다라고 말한다. 기분이 참 묘했다. 누가 봐도 두 개다 헛소리인데 말이다.

 

 

끝으로 영화를 보면서 보랏의 그의 딸과 하는 말이 도대체 어디 말일까 궁금했다. 주인공인 사차 코헨(Sacha Baron Cohen)은 영국 사람인데 처음 들어보는 말을 너무도 잘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영화에서 주인공과 그의 딸이 주고받는 대화는 서로 다른 언어라고 한다. 사차 코헨은 히브리어를 매우 유창하게 해서 주로 히브리어로 말하고 딸인 마리아 바칼로바(Maria Bakalova)는 불가리아 출신의 배우로 불가리아어로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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