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미국에 비해 인구수나 경제 규모(GDP 기준)가 1/10 정도 수준에 불과하고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사용하는 언어도 같기 때문에 캐나다 회사들이 미국 회사를 상대로 경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월마트, 홈디포, 코스트코 등등의 가게들도 대부분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캐나다 회사를 찾기가 힘들다. 또한 Tim Hortons(캐나다의 대표적인 커피, 도넛집), Rona(홈 센터) 등과 같이 캐나다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미국 회사들에게 합병되는 경우도 잦다.
특히 문화, 방송 분야에서도 캐나다 회사들이 경쟁이 힘들다고 한다. 미국의 거대한 자본력과 인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캐나다 산(産) 콘텐츠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이런 캐나다 산 출판물을 알리기 위함인지 우리 동네 도서관은 캐나다의 작가가 쓰거나, 캐나다 출판사에서 제작된 책에는 캐나다 국기를 붙여놓았다. 아무래도 캐나다 국기가 붙어있는 책들을 보면 무슨 내용일까 싶어 손이 가게 마련이다.
도서관에서 특별히 빌리려고 생각한 책이 없는 날에는 새로 나온 책이나, 스태프가 추천한 섹션에 있는 책을 둘러보고는 한다. 그중에서 캐나다 국기가 붙어있는 책이 있길래 꺼내보았다. 'Overtime'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이것은 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의 부제목 'Portraits of a Vanishing Canada(사라져 가는 캐나다의 초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캐나다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산업이나 직업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책이다. 캐나다에서 오래된 보일러나 Steam Traction Engine(스팀 트랙터)를 검사해 본 이후 '오래된 것'들에 빠져있는 나로서는 정말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책은 2008년부터 약 10년 동안 키치너-워털루(토론토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30분 거리) 지역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글쓴이는 'Harvey Wang's New York(1990년 발간, 뉴욕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기록한 책)'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책의 오른쪽 페이지에는 강렬한 흑백사진이 실려있고, 왼쪽에는 그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한다.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부터 강렬했다.
직업이 Sign Painter라니!
가끔씩 오래된 가게를 지나가다 보면 유리에 페인트로 써진 글씨들을 본 적이 있다. 대부분 너무 오래되어 글씨가 희미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그 글씨를 썼을 텐데 나는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였다.
책에는 이렇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거나, 아니면 아직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을 법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Wood Bender(가구 제작을 위하여 나무를 구부리는 사람), Foundryman(주물을 만드는 사람), Stained Glass Window Maker(스테인드 유리를 만드는 사람), 녹음기를 고치는 사람, 타자기를 고치는 사람 등등.
글쓴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2008년이기 때문에 글을 읽다 혹시 아직도 이러한 가게나 공장이 있을까 자주 검색을 해보았다. 절반 정도는 그 사이 문을 닫았는지 문을 닫았다는 뉴스가 보이거나 지도에서 검색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20세기 초중반 키치너-워털루 지역으로 많은 독일 사람들이 이민을 왔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고 독일식 빵집, 정육점, 옷가게 등도 많았나 보다. 마침 이 책에 등장하는 한 빵집이 아직도 영업 중이니 언제 키치너에 갈 일이 있으면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Alpine Cafe, 501 Krug St, Kitchener).
끝으로 책에 등장하는 빗자루 가게와 장갑 가게도 한 번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빗자루 가게 사장님은 자기들이 만드는 Light Duty 빗자루가 수입 산 Heavy Duty 빗자루보다 오래 쓴다며 한 고객은 실제로 이 빗자루를 8년 동안 썼다고 했다. 차고 청소를 하려면 빗자루를 쓸 일이 많은데 얼마나 좋은지 한 번 써보고 싶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작업용 가죽 장갑을 만드는 아저씨도 자신 있게 'You get what you pay for(싼 게 비지떡과 비슷한 말)'라고 한다. 이 또한 얼마나 좋은지 한 번 써봐야겠다.
빗자루 가게: Hamel Brooms, 1411 King St N, St. Jacobs
장갑 가게: Dotzert Glove Company, 5108 King St, Beamsville (몇 년 전 주인이 바뀌면서 키치너-워털루 지역을 떠났다)
만약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을 수 있다면 읽어 보기를 권해 드리고 싶다(무엇보다 사진이 많고 책이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
Somersby Cider (써머스비 사이다) (2) | 2021.01.04 |
---|---|
[2020년 결산] 잘 산 것과 잘 못 산 것 (0) | 2021.01.02 |
영화 - 보랏 2(Borat Subsequent Moviefilm) (0) | 2020.11.09 |
태극기가 왜 거기서 나와 (0) | 2020.10.05 |
브런치 (0) | 2020.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