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캐나다에 온 이후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바로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젊게 산다는 것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나이를 세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나이로는 이미 40이 되었지만 여기에서는 아직도 38살이기 때문에 즐겁다. 게다가 로또를 살 때면 아직도 종종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말을 듣는다. 술을 살 때는 워낙 신분증 검사를 까다롭게 하기 때문에 항상 신분증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로또를 살 때는 그것보다는 덜 엄격해서 정말 나이가 의심될 때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특히 캐나다 아주머니들의 경우 내 신분증을 보면 조금 놀라고는 한다.

 

기본적으로 여기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 얼굴에 익숙하지 않으니 보기보다 어려 보이나 보다. 중, 고등학생 때부터 평생을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캐나다에 온 이후 이렇게 젊어졌기 때문에(혹은 젊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은 캐나다 삶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아직도 회사에서는 언제나 막내 같은 기분이다. 대학교 친구들이나 회사 입사 동기들은 아무리 못해도 차장 정도는 되었겠고 개중에 잘 나가는 사람들은 부장을 달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일하는 회사에는 70대가 넘은 아저씨들도 꽤나 있고, 기본적으로 나 혼자서 맡은 구역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배나 후임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없다. 이렇다 보니 회사에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도입되거나 IT 시스템이 도입될 때는 내가 곧잘 불려 가고는 한다. 이것은 어쩌다 보니 슈퍼바이저 머리에 내가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인데, 내가 컴퓨터를 잘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워낙 못하니 그렇게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적어도 파워포인트, 엑셀이나 워드 정도는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못하는지 누구든지 한국에서 기본 정도만 했다면 캐나다에서는 컴퓨터를 잘하는 편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회사의 IT 시스템을 통째로 뒤집어엎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우리 팀에서는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차출되었다. 

 

프로젝트에 차출되었다고는 하여도 완전히 발을 담근 것은 아니었고, 나중에 이것들을 실제로 사용할 사람들 입장에서 테스트를 해야 하니 그때마다 이것저것 테스트를 도와주었다. 물론 팀 별로 사람이 차출되었으니 처음에는 6~8명 정도가 테스트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일반 인스펙터 중에서는 나 그리고 원자력 발전 담당 인스펙터 중에서 한 명, 이렇게 두 명만 남게 되었다.

 

어쨌든 기존에 사용하던 프로그램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인스펙터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을 교육해야 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이 나에게 '나중에 다른 인스펙트들 교육을 해야 하는데, 뭐 들은 것 있니?'라고 물은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당연히 우리 팀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나 말고도 다른 인스펙터들도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었음) '그래, 슈퍼바이저한테 들은 거 있어. 내가 프로젝트 참여했으니 내가 해야지'라고 답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어느 순간 알고 보니 내가 일반 인스펙터들을 모두 교육하고, 다른 사람 한 명이 원자력 인스펙터들을 모두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차! 이럴 수가!!! 그때 물어보았던 것이 모든 인스펙터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구나!!!!

 

물론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후회하기에 이미 늦었을 때였다. 게다가 조금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내가 그때 다른 사람들 교육을 못 한다고 했어도 결국 나밖에 안 남았으니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지난 2월 말 총 삼일 동안 하루 8시간씩 다른 인스펙터들을 교육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8시간 동안 영어로 말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싶었지만 막상 하고 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니 끊임없이 할 말이 있었다. 그래도 지하에 내려가서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으려니 하루가 끝날 때마다 생각보다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아래 링크된 동영상에서 캡쳐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교육이 아니었다. 그 교육 이후에 끊임없이 몰려드는 문의 전화와 이메일, 그리고 계속되는 보충 교육이 더 문제이다. 교육을 들은 인스펙터들은 내가 교육을 했으니 당연히 나에게 끊임없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다. 보통 내가 받는 질문은 이미 교육에서 언급했거나 아니면 나중에 전체 메일을 통해서 공지를 했던 사항들이다. 심지어 교육을 다 마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이 소프트웨어에 어떻게 로그인하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기본 중의 기본적인 질문은 내가 프로젝트만 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서라도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나도 내가 해야 하는 검사가 있고 심지어 똑같은 소리를 한 열 번 정도 하고 있자니 이제는 나도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어쨌든 다음 주에도 세 시간씩 두 번 보충 교육을 해야 한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정말 지겨우니 이제는 조금 진보된 질문들을 받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번에 교육했던 것도 Vlog로 만들기 위해서 조금씩 촬영을 해보았다. 내가 영어를 하는 것을 녹화해 놓고 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생각보다 영어에 액센트가 많아서 놀랐다. 조금 더 높낮이가 있어야 할 텐데 아주 단조롭게 말하는 것이었다. 듣는 사람들이 졸리지 않았을까 싶다. 슬프게도 아무리 캐나다에 와서 젊어졌다고 혼자서 생각을 해도 영어 발음을 극복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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