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팬데믹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재봉틀을 샀으니 벌써 재봉질 능력을 탑재한 지도 3년이 지났다. 하지만 내가 정교함이나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에는 최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그저 고장 난 것을 수선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바지 기장을 줄이거나, 떨어진 단추를 달거나, 구멍 난 애들 바지를 꿰매어주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런데 지난여름 미국에 내려갔을 때 월마트에 들렀을 때 재통틀 용품이 있는 칸을 둘러볼 일이 있었다. 미국 월마트는 캐나다 월마트와 비교하면 물건의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나도 몰래 한 땀 한 땀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침 막내 녀석이 매우 좋아하는 디즈니 프린세스와 엘사 천을 팔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물건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카트에 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내 녀석이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어 줄 것이냐고 종종 묻기는 했지만 별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재봉틀 옆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렇게 한 달 반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문득 이것으로 엘사 쿠션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쿠션 속이 하나 남는 것이 있었고 그저 네모 모양으로 재봉질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엘사 쿠션에 사용될 재료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쿠션이 덮일 만큼의 크기로 원단을 자르고 재봉질을 한 후 버리는 옷 중에서 쓸만한 지퍼를 뜯어서 쿠션에 붙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헌 옷들은 지퍼를 남긴다

 

버리는 옷들 중에서 혹시 쓸만한 지퍼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몇 개 지퍼가 달려있는 옷들이 있었지만 다들 짧았다. 잠바에 붙어있는 지퍼가 그나마 쓸만해 보였으나 양쪽에 달린 지퍼를 뜯고 다시 달려니 매우 귀찮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좋자고 만드는 것이니 벨크로(찍찍이)를 다는 것으로 (혼자서) 합의를 보았다. 

 

엘사 모가지를 딴다는 느낌으로 천을 대충 자른다

 

아무리 내가 재봉질 실력이 없어도 끝처리 없이 쿠션을 만들었다가는 곧 미친여성 머리처럼 풀릴 것이 분명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끝부분을 오버로크 처리를 할 수 있는 서저(Serger)가 있다면 좋겠지만 물론 그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각 모서리를 1cm 정도 접어 재봉질을 하는 것으로 끝처리를 해야겠다.

 

Overcast Foot 을 이용해서 끝처리

 

내가 가지고 있는 Foot(노루발) 중에서 무엇을 쓰면 좋을지 찾아보다 Overcast Foot이라는 것을 쓰기로 했다. 정확히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뭔가 적당해 보였다. 지금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천을 저렇게 접지 않고 그냥 사용하는 것 같다. 캐나다에도 어디 백화점 문화센터라도 있으면 찾아가서 노루발 사용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을 뿐이다.

 

끝처리를 한 다음에는 그냥 뒤집어서 반으로 접은 후 모서리를 재봉질하였다.

뭔가 거지 같으면서도 만족스럽다

 

 

쿠션이 내가 만든 천 쪼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는 마지막 작업으로 벨크로를 붙이면 된다. 1~2년 전에 온갖 잡다한 것을 파는 프린세스 오토(Princess Auto)에서 벨크로를 사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붙이기로 했다. 물론 벨크로의 색깔과 두께가 엘사 천과는 매우 어울리지 않지만 뭐 우리끼리 하는 일이니 그냥 달기로 하였다. 

 

 

 

 

벨크로를 붙인 후 쿠션 속을 집어넣어 쿠션을 완성했다. 7불 정도 주고 산 천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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