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검사의 하루

캐나다에 처음 와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워터소프트너라는 기계였다. 처음 렌트했던 집의 집주인은 꽤나 까다로웠는데 렌트 계약서에 참 다양한 내용을 적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가 워터소프트너에 소금이 떨어지지 않게 보충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워터소프트너라는 것이 무슨 물건이며 거기에 왜 소금이 들어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캐나다에서는 다들 이런 것을 쓰는구나 싶어서 그냥 하라는 대로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집주인에게서 들어 보니 여기 물 속에는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이런 물을 Hard Water라고 함) 침전물도 많이 생기고 피부에도 좋지 않아 워터소프트너를 이용해서 미네랄을 제거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는 물을 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워터소프트너가 도대체 뭐가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워터소프트너를 거쳐 나온 물은 엄청나게 미끌미끌했기 때문에 비누가 다 닦인 것인지 모를 정도로 기분이 묘했다. 

 

얼마 후 에드먼튼에서 리자이나로 이사를 갔는데 이번에도 집에 워터소프트너가 달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기계를 쓰는가 보다고 생각을 했다. 캐나다가 아무리 넓다고 하지만 주를 이동했는데도 사람들이 똑같은 기계를 쓰고 있으니 다른 주에서도 당연히 쓰고 있을 줄 알았다. 아직도 이 기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한 번 써보았다고 능숙하게 소금을 채워 넣어 주고는 했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주를 이동해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사스카추완의 리자이나에서 저 멀리 온타리오의 킹스턴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이때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되었는데 하나는 바로 온타리오에서는 우유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팔고 있다는 것과 여기서는 아무도 워터소프트너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여기도 물에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다고 했다. 실제로 식기세척기를 돌려보거나 전기 주전자로 물을 끓여보면 접시나 주전자에 하얗게 침전물들이 들러붙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워터소프트너를 쓰는 사람을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사를 위해서 이 집 저 집 둘러보았을 때 워터소프트너가 설치되어있는 집이 없었고, 내 주변에서도 이것을 쓴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이것을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물도 미끌미끌해지는데 뭐하러 돈을 들여서 그것을 설치한다는 말인가!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나면 생기는 침전물. 일일이 벗겨내기 번거롭고 몸에 크게 해롭지는 않으니 그냥 두는 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5년 넘게 킹스턴에 살다 보니 점점 워터소프트너가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식기세척기에 들러붙는 미네랄이야 크게 불편한 점은 없지만, 아무래도 점점 건조해지는 피부나 거칠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면 정말 물이 문제가 있기는 한 것 같았다. 특히 나보다 머리가 훨씬 긴 와이프는 아무리 이런저런 컨디셔너를 사용해 봐도 거칠고 엉키는 머리카락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와이프를 아끼는 마음에 워터소프트너를 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사를 갔을 때 이미 집에 워터소프트너가 달려있어서 설치 방법이나 작동 원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설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자료들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우리 동네 수돗물의 Hardness(물속에 들어있는 미네랄을 수치로 나타낸 것)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질 수 있으니.

 

자기가 사는 동네의 수도물 공급 업체의 홈페이지에 가면 수질 분석 보고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자료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Utilies Kingston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매년 수돗물의 수질 검사를 한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Hardness는 약 120 mg/L 였다. 보통 120 mg/L부터는 Hard Water라고 부르는 듯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 살았던 에드먼튼과 리자이나의 Hardness를 검색해 보니 각각 165 mg/L, 287 mg/L 였다. 그 수치만 보면 에드먼튼이나 리자이나는 Hardness가 워낙 높아서 많은 가정에서 워터소프트너를 사용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수준이라 많이들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다음에 찾아본 것은 워터소프트너의 작동 원리였다.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는데 찾아보니 생각보다 간단했다. 수돗물이 워터소프트너의 레진 탱크(Resin Tank)를 거치면서 물속의 마그네슘과 칼슘 등이 레진 속의 소듐(나트륨, Na+)과 자리를 바꾼다. 그리고 레진 탱크 속에 소듐이 부족해지면 소금물을 통과시켜 소듐을 보충해 주게 되며 이것을 'Regeneration'이라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한 번 원리를 알고 나니 전 집주인이 계약서까지 써서 워터소프트너에 소금을 집어넣으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제 원리도 알았으니 워터소프트너를 사야겠다. 나 같은 사람이 이것을 가장 쉽게 살 수 있는 곳은 홈디포나 캐네디언 타이어와 같은 홈센터였는데 어디든 30,000 grain 또는 40,000 grain 두 종류의 워터소프트너를 팔고 있었다. 가격은 물론 30,000 grain짜리가 40,000 grain짜리 보다 100~200불 저렴했다. 그런데 도대체 grain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고 나는 어떤 용량을 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깊게 파고들어 가 보았다.

 

 

찾아보니 이 grain이라는 단위는 미국에서 물의 Hardness를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단위인데 간단히 말하면 1 gpg (grains per gallon) = 17.1 mg/L 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동네 수돗물의 Hardness와 우리 집의 한 달 수돗물 사용량을 이용해서 계산을 해 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 킹스턴 수돗물의 Hardness = 약 7 gpg (120mg/L)
  • 30,000 grains 용량의 워터소프트너가 한 번의 Regeneration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대 물의 양(*) = 약 4,285 gal (약 19 m3)
  • 우리 집은 한 달에 약 18~23m3의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30,000 grains 용량의 워터소프트너면 적당

 

(*) 효율을 고려하면 20,000 grains 정도 처리를 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함

 

 

우리 집에 필요한 용량을 알아냈으니 이제 정말 홈센터에 가서 기계만 사 오면 되지만 문제는 워터소프트너의 가격이 은근히 비싸다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사든 세금을 포함하면 기계 가격만 무려 800불이 넘었다. 그에 반해 미국 홈디포에서는 같은 용량의 기계를 300불 후반에 판매하고 있었다. 세금이랑 환율을 생각해도 캐나다 달러로 500불 초반이면 살 수 있다는 소리이니 예전처럼 미국에 갈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차를 타고 내려가서 사 오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미국에 내려가 본 적이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결국 급한 것은 아니니 언젠가 세일을 하면 사야지 생각을 했는데 마침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캐네디언 타이어에서 할인과 포인트 적립 행사를 하는 것이었다. 결국 총 560불 정도에 월풀 30,000 grains 워터소프트너를 구입할 수 있었다. 

 

내가 산 모델은 월풀의 WHES30 워터소프트너

 

여기까지의 과정은 참 길었지만 설치는 생각보다 쉽다. 그저 물이 들어오는 배관을 잘라서 워터소프트너에 연결을 하면 된다. 마침 우리 집 배관은 플라스틱인 PEX 파이프이기 때문에 구리 배관보다는 훨씬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때 PEX 배관을 자르는 PEX 컷터와 수도 배관과 워터소프트너를 연결할 호스가 필요하다. 나는 워터소프트너 연결을 위해서 SharkBite Water Softener Connection Hose를 이용하였다. 이 호스의 가격은 하나당 $25.17(세금 별도)로 놀랍도록 비싸지만 작업 시간 및 용이성을 고려해서 그냥 이것을 구입하였다. 

 

이 호스의 단점은 길이가 6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이가 길다면 집 밖으로 나가는 물 배관을 지나서 워터소프트너를 설치할 수 있었을 테지만 길이가 짧은 관계로 그냥 상수도가 들어오는 곳에다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집 밖으로 나가는 물 배관을 지나서 워터소프트너를 설치하면 좋은 점은 처리를 할 필요가 없는 물(잔디나 식물에 주는 물 등)이 워터소프트너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소금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워터소프트너를 바이패스 시키면 되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내려가서 바이패스 밸브를 조작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은색의 플렉서블 호스가 바로 SharkBite Water Softener Connection

 

열심히 설치하고 있는 중. 가운데 보이는 투명한 튜브가 밸브 드레인 라인

 

 

워터소프트너를 수도와 연결했다면 이제 남은 일은 간단한 것들이다. Renegeration 과정에서 배출되는 물이 빠져나갈 호스를 밸브 드레인에 설치하고 소금을 담아놓은 탱크가 넘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버플로우 드레인을 설치하는 것이다. 만약 워터소프트너가 하수구 근처에 있다면 일이 쉬웠겠지만 우리 집은 반대편 벽에 하수구가 있는 관계로 밸브 드레인을 위해서 6m가 넘는 호스를 머리 위로 올려야 했다. 다행히 기계에서 배출되는 물의 압력이 높은지 호스가 머리 위를 지나는데도 문제없이 물이 배출되었다. 

 

 

머리 위를 지나는 밸브 드레인 호스

 

여기까지 완료되었으면 상수도가 들어오는 밸브(Main Shut Off Valve)를 열어서 어디 새는 곳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워터소프트너에 물과 소금을 채운 후 수동으로 Recharge(Regeneration)을 시켜주면 모든 것이 완료된다. 

 

 

감이 떨어져서 소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몰랐다. 처음에 20kg 한 봉지를 사왔는데 밑바닥에 조금 찰 뿐이었다. 이 모델의 경우 총 3~4 봉지가 들어간다.

 

다음 날 다시 지하로 내려가서 워터소프트너가 작동을 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설치 전 받아 놓은 물과 설치 후 받은 물의 Hardness를 비교해 보았다. 수영장 물을 관리하기 위해서 쓰는 테스터밖에 없어서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100~200mg/L 사이에서 0 mg/L 에 가깝게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워터소프트너 사용 전/후 물의 Hardness 비교(파란색을 비교 중). 사진으로는 구분이 어렵지만 위의 파란색은 100~200 mg/L 사이이고 아래의 파란색은 0 mg/L에 가깝다. 즉 워터소프트너가 잘 작동을 하고 있다

 

한 일주일 워터소프트너를 사용한 소감은 지난번 보온재 설치와는 달리 그 효과를 즉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에서 나오는 물이 점점 미끄러워지더니 온수를 담아놓는 워터 히터 속의 물까지 모두 처리된 물로 바뀐 이후에는 비누가 닦였는지 모를 정도로 미끄러워져 버렸다. 그리고 내 짧은 머리도 놀랍도록 부드러워졌다. 운전을 하면서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하루는 나도 몰래 내 머리카락이 너무 부드러워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혹시 캐나다에서 상한 머리카락으로 고생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워터소프트너 설치를 추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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